임진왜란 기록 남긴 ‘징비록’… 최초 책판 209장 대량 발굴

배소영 2024. 6. 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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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저술한 '징비록'의 최초 책판 209장을 발굴했다고 3일 밝혔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책으로 이 책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위기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과 함께 목판의 제작을 통한 문헌의 보급이 그 바탕에 있다"면서 "이번에 발굴한 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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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정씨 정봉진 일가서 기탁
간행 기록은 ‘운양잡록’에 수록

한국국학진흥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저술한 ‘징비록’의 최초 책판 209장을 발굴했다고 3일 밝혔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고 귀향한 후 전쟁 동안 경험한 사실을 남긴 기록물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임진왜란을 경험한 류성룡은 1598년 11월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징비록을 남겼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통해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쳐 전개된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전황, 상황에 대한 반성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현재 류성룡의 친필 징비록은 한국국학진흥원이 기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징비록 책판 인수 현장.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징비록의 간행과 유통

징비록은 조선시대에 여러 판본으로 간행돼 유통됐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져 1695년에는 일본판 ‘조선징비록’이 발행되기도 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활자본(8권본)과 1647년 무렵에 간행된 목판본(16권본), 그리고 1894년 옥연정사에서 간행한 목판본(16권본) 등이다. 목활자본은 고서만 일부 남아 있고, 1894년 간행 목판본은 고서와 책판이 모두 남아 있다.

이번에 발굴한 1647년 무렵 제작한 책판은 그동안 낱장 몇 장만 전해졌다. 따라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이 시기에 제작된 책판을 대량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징비록 1647년판 권4의 13장 부분.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1647년 시기 간행된 징비록 책판

이 책판은 류성룡의 외손자인 조수익(1596∼1674)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판각 작업을 시작해 제작한 것이다. 문경에서 보관돼 오던 것을 5월 초 청주정씨 정봉진 일가에서 기탁했다. 간행 관련 기록은 이의현(1669~1745)이 지은 ‘운양잡록’에 수록돼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현재 소장하고 있는 1894년 옥연정사 간행 책판(16권본)과 비교한 결과 두 책판의 권차는 동일하지만 형태가 다름을 밝혀냈다.

17세기 중반 책판의 형태적 특징과 판각법 등으로 보아 이번에 발굴한 책판 209장은 1647년 무렵에 새긴 책판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당대 판본과 비교해 보면 책판의 마모와 계선, 획의 탈락, 판심 부분의 어미 모양 등이 일치하는 것을 통해 그 근거가 더욱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책으로 이 책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위기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과 함께 목판의 제작을 통한 문헌의 보급이 그 바탕에 있다”면서 “이번에 발굴한 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다”고 말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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