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 ‘보수 조직’에 불어닥친 새 바람…“엄청나네” “아직 못믿어” 분분
판결문 분석·항소 실익까지 판단
‘업무 과중’ 시달리는 변호사들
AI 쓰면 40~60% 시간 절약 가능
발목잡는 ‘韓법조계’ 보수적 분위기
이 같은 명령어를 입력하자 인공지능(AI) 시스템은 60장에 달하는 판결문을 약 5초 만에 분석한 뒤 결과를 내놨다. AI는 단순 분석에 그치지 않고 목차별로 나눠 ‘사건의 개요’, ‘본안에 대한 판단’, ‘결론’ 등에 대한 구체적 의견을 제시했다. 사용자는 사건발생 원인과 진행과정, 법원의 판단과 그 이유, 결론까지 전체적 흐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법률 업무에서 AI가 발휘할 수 있는 성능은 여기가 끝은 아니었다. 만약에 패소를 했을 때 재심을 요구하면 승소할 가능성을 다른 판결문을 참고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의견서를 작성해달라고 입력하자 AI는 다시 5초 만에 답변을 내놨다.
AI는 이번 답변에서도 ‘원심 판결의 요지’와 ‘항소심 판단 시 고려사항’, ‘항소심 승소 가능성에 대한 의견’ 등을 목차별로 분류하고 구체적 분석을 제시했다. AI는 “종합적 사정을 고려해볼 때 승소 가능성을 장담할 수는 없으나, 현재로서는 항소를 제기해 볼 만한 사안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AI 활용법 심화강의를 듣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의견서의 최종 버전으로 사용할 만큼 100%의 완성도는 아니지만 초안으로 활용하기에는 충분하다”며 감탄을 쏟아냈다.
사회 전반에서 사용이 늘고 있는 AI 역할이 법조계에서도 그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AI를 적절히 활용하면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만큼 남는 시간을 다른 업무에 투자할 수 있어서다.
변호사가 기존의 방식으로 소장 작성과 판결문 분석, 항소 실익 판단을 비롯한 업무를 처리하려면 보통 사건 한 개당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한다. 재판을 준비할 때는 상대방이 제출한 수십장의 준비서면을 일일이 검토하고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법원에 제출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는 데만 짧게는 3~4시간이 걸린다. 사건 난이도나 진행상황에 따라 길게는 며칠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근무하는 변호사 한 명이 맡는 사건은 평균 한 달에 40~50건이다. 많은 경우 인당 평균 60~70건까지도 늘어난다. 업무가 밀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변호사의 집중력과 체력은 줄고 업무 효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법률 업무에 AI를 활용하면 효율성이 대폭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속속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의 법률리서치 서비스인 ‘블룸버그 로’에 따르면 변호사가 AI를 활용할 경우 업무에서 40~60%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법무법인을 위한 업무용 솔루션을 제공하는 ‘클리오’는 변호사가 AI를 쓰면 법률업무 시간을 최대 50%까지 단축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한국 법조계에서 AI 도입은 아직 꿈같은 이야기다. 수년 동안 사법고시와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고 평생을 법률시장에 몸담아온 법조인들이 주류인 한국 법조계는 대표적인 ‘보수적 조직’으로 꼽힌다. 다른 분야에서 AI 도입을 시작하면서 성능 등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들었지만, 법률 분야에서는 ‘아직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만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이 워낙 보수적인 조직이고 평생을 우직하게 법률 공부만 한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AI를 ‘돌연변이’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다”며 “주변을 둘러봐도 변호사들이 ‘기계가 뭘 아느냐’는 말만 할 뿐, 법률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경우는 아직 거의 없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특히 AI 활용으로 인한 ‘할루시네이션(허위정보 생성)’을 가장 우려한다. 만약 AI가 근거가 없는 허위 법령 등을 제시할 경우 업무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종국에는 패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법조인 개개인의 ‘AI 숙련도’에 따라 할루시네이션을 피할 수 있는 노하우도 마련됐다는 것이 전문가들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특정 법령에 대해 질문할 때 단순히 ‘알려달라’고만 하지 말고, ‘답변의 근거가 되는 법령과 판례를 명시해달라’거나 ‘근거가 불확실하다면 추측이나 개인적 의견은 자제하라’ 식으로 구체적 명령어를 추가하는 방법이 있다.
AI 심화과정 강의를 들은 한 변호사는 “강의에서 실제 업무와 관련한 AI 활용법을 접하고 다음날 바로 회의에서 사용할 자료를 시험 삼아 만들었는데 굉장히 의미 있는 초안이 나왔다”며 “법률업무에서 어떤 정보를 어떻게 충실하게 입력하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가 엄청나게 광범위해 질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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