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의 함정에 빠진 이마트[K기업 고난의 행군⑦]
월마트, 까르푸, 테스코 등과의 경쟁에서도 우위 점해
최근 들어서는 이커머스에 밀려 고전
과도한 외형 확장, 잘못된 투자 누적 등이 원인
관리해야 할 자회사 너무 많아
이 과정에서 온라인 투자 타이밍도 놓쳐
[커버스토리 - K기업 고난의 행군⑦]
10년 전인 2013년 이마트의 영업이익은 7351억원에 달했다. 당기순이익은 4762억원. 당시 이마트 주가는 20만원대 중반이었다. 중국 사업이 고전하는 상황에서도 국민연금이 나서서 이마트 투자를 늘리는 등 이마트는 국내 유통산업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한때 대기업 비(非)오너가 임원 중 최고 주식 부자는 이마트와 신세계 주식을 가진 구학서 전 신세계그룹 회장이었다.
지난해 이마트는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29조472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도 469억원의 손실을 냈다. 이마트 별도 기준으로는 1880억원을 벌었지만 다른 자회사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적자를 면치 못했다. 여기에 이커머스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이마트의 영향력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 힘 빠진 본업, 뒤늦은 경영 판단
과거 이마트는 대형마트 1위일 뿐만 아니라 유통산업을 대표하는 회사였다. 미국 월마트, 프랑스 까르푸, 영국 테스코 등 세계 굴지의 회사들이 한국 사업을 철수한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이마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커머스에 밀려 오프라인이 어려워진 것도 문제지만 이마트의 주요 실책들도 원인이 됐다. 증권업계에서는 △과도한 외형 확장으로 본업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잘못된 투자가 누적된 것 등을 이마트 부진의 요인으로 꼽았다.
실제 이마트가 현재 관리하는 주요 자회사(신세계백화점 계열 회사 제외)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이마트에브리데이(슈퍼) △이마트24(편의점) △신세계프라퍼티(스타필드) △SSG닷컴 △지마켓 △W컨셉 △신세계푸드 △신세계엘앤비(와인) △SCK컴퍼니 △스무디킹 △신세계건설 △신세계아이앤씨(리테일테크) △신세계야구단 △신세계조선호텔 △신세계영랑호리조트 등의 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마트는 1993년 창동에서 1호점을 연 이후 3년 뒤인 1996년부터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유통을 넘어 IT, 건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전문가는 과도한 사업 확장으로 본업에 집중할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이 전문가는 “이마트는 홀딩스 개념이고 그 아래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과 같은 다양한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런 구조가 본업(할인점)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사업 전략을 짤 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스타벅스, 노브랜드, 스타필드 등 성공한 사업도 있는 반면 △PK마켓 △분스 △부츠 △제주소주 △삐에로쇼핑 등은 실적 부진으로 사업을 철수했다. 가장 최근 인수한 이베이코리아(현재 G마켓) 상황도 좋지 않다. 이마트는 2021년 6월 이베이코리아 지분 80.01%를 3조4404억원에 인수했다. G마켓은 인수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속 줄어들면서 적자 전환했다. 최근 2년 누적적자는 976억원이다. 이런 투자가 계속되면서 사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베이 인수 타이밍과 가격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뒤늦은 추격전과 이에 따른 조급증 때문에 과도하게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이마트가 오프라인에서 시행했던 최저가격을 온라인에서 실현하면서 여기에 빠른 배송까지 더했다. 이는 유통의 중심을 급속히 온라인으로 옮겨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마트의 대응은 어정쩡했다. 2019년에 와서야 그룹 계열사들을 쓱닷컴 우산 아래로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쿠팡의 새벽배송과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선택했다. 미국, 일본에서 투자금을 유치해 인프라에 투자한 덕이다.
이 같은 시대 변화에 미리 대응하지 못한 것은 과거 성공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2014년 이후 이커머스 시장이 이마트가 예상한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 정용진 회장이 일찍부터 “이커머스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과거 경영진은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정 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회장과 함께 이마트를 성장시켰던 경영진의 목소리가 더 컸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한 자리에서 “그때 이커머스 사업을 시작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마트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더 늦기 전에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업계 한 애널리스트는 “이마트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편의점, 슈퍼마켓 등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돈을 버는 사업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 개선인 만큼 외형이나 규모에 집중하기보다는 알짜를 골라내는 ‘옥석 가리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밖에 또 다른 뒤늦은 경영판단도 있었다. ‘소싱(공급망 관리)’과 관련해 후발주자인 롯데마트보다 의사결정이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마트는 계열사들이 독자적으로 상품을 조달하고 있다. 유통업의 핵심인 소싱에서 경쟁사인 쿠팡 등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원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이마트는 그 타이밍을 놓쳤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롯데마트와 롯데슈퍼는 오프라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022년 11월 상품팀을 통합해 공동으로 상품을 소싱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에는 이 통합 소싱을 편의점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각 회사들의 공동 매입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게 통합 소싱의 장점이다. 롯데마트는 준비 기간을 3년으로 잡고 2025년에는 시스템을 통합해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말에야 마트, 슈퍼, 편의점 부문의 통합 소싱을 결정했다. 오는 7월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 합병법인을 출범시키고 추후 이마트24 소싱까지 합쳐 2025년에는 본격적인 통합 시너지 창출에 나설 예정이다.
◆ 반전의 카드 ‘거기서 하지 못하는 것들’
이마트는 본업 경쟁력을 키워 경쟁사에서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상시 저가’도 대표적인 전략이다. 기존에는 주말에 한해 진행해온 가격 혜택을 월 단위로 확대했다. 고객에게는 ‘이마트에 가면 언제든 싸게 살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겠다는 전략이다.
PB(자체 브랜드) 상품도 늘릴 계획이다.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고객이 열광하는 차별화된 초저가 상품 개발을 지속해 핵심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겠다”며 “가격 역주행 프로젝트와 가격 파격 선언 테마행사를 통해 할인점의 본질인 EDLP 가격 구조를 확립, 매출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DLP는 항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Everyday low price)를 의미한다.
델리(즉석조리식품)와 신선식품도 이마트가 강조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이마트는 델리코너를 먹거리 성지로 만들기 위해 제철 먹거리를 활용한 신상품을 출시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신선식품 역시 이마트가 직접 농가를 선택하고 품질관리부터 상품 선별까지 유통 전 과정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상품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마트는 기후와 계절에 상관없이 채소류 상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스타트업 ‘앤씽’과 협업해 스마트팜도 운영 중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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