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큰 SK…사업 재편안에 최태원 현금확보 담을까
사업 옥석 가리기
1조원대 재산 분할
악재의 연속이다. 주요 계열사 실적 부진으로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이 추진 중이던 에스케이(SK)가 때아닌 총수 리스크에 직면했다. 약 1조원 이상의 현금을 배우자에게 주라는 최근 법원의 판결에 따라 총수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 유지와 현금 마련이라는 또다른 과제가 에스케이 경영진에 주어졌다. 사업 재편이 고차 방정식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달 말 예정된 그룹 확대 경영회의에서 구체적인 사업 재편안이 나올지도 미지수다.
빚에 의존한 외형 확장의 후폭풍
지난해 말 최창원 에스케이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취임한 후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을 진두지휘 중이다. 수년 새 몸집은 눈에 띄게 불었으나 수익성 회복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아서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등을 보면 지난해 순이익은 6590억원으로 한 해 전에 견줘 94% 급감했다.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이익이 1조원에 못 미쳤다. 에스케이하이닉스·에스케이온·에스케이씨 등 주요 계열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금리 환경 장기화에 따라 현금 흐름도 위태롭다. 수년에 걸쳐 빚을 토대로 한 몸집 불리기 전략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116조7050억원으로 2019년(61조1300억원)보다 4년만에 두 배 넘게 불었다. 이에 따라 지주사인 에스케이㈜가 낸 이자비용(연결기준)만 3조원을 웃돈다. 특히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야하는 에스케이온의 자금 부담은 일찌감치 불거진 바 있다.
계열사 간 사업 중복 문제도 불거진 터다. 질서 있는 외형 확장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한 예로 태양광 사업은 에스케이이엔에스와 에스케이가스가, 풍력 사업은 에스케이에코플랜트와 에스케이이터닉스가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 사업도 에스케이㈜, 에스케이이엔에스, 에스케이네트웍스가 저마다 추진 중이다. 동박 사업도 에스케이㈜와 에스케이씨가, 수소사업은 에스케이이엔에스(액화수소생산)와 에스케이가스(수소복합단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수소충전소) 등이 각각 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에스케이의 사업 재편 핵심은 계열사 간 중복 사업 이관·저수익 자산 매각·자금 조달 및 관리 강화 쪽에 맞춰져 있었다. 최근 수개월새 일부 계열사의 매각이 거론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총수 리스크로 안갯속
통상적인 사업 재편을 구상하던 에스케이 경영진은 좀 더 복잡한 과제를 떠 안게 됐다. 지난주 서울고등법원이 최태원 회장에게 1조원 남짓의 현금을 배우자 노소영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보유 현금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최 회장으로선 보유 자산을 팔아서 현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그 마저도 대부분 그룹 지배력과 관련이 깊은 에스케이㈜ 지분이 대부분이어서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란 게 중론이다.
에스케이 안팎과 시장에선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결국 사업 재편안에 반영해야 하지 않겠느냐란 전망이 나온다. 에스케이㈜와 에스케이스퀘어의 합병 가능성이 시장에서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 회장이 하이닉스 배당 확대에 따른 수혜를 입기 위해선 두 회사의 합병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에스케이스퀘어는 하이닉스의 최대 주주다.
이동구 참여연대 실행위원(변호사)은 “에스케이㈜ 지분을 팔기 힘든 최 회장은 어떻게든 배당 수입을 늘려야 한다. 에스케이㈜가 현금 창출력이 있는 에스케이텔레콤과 에스케이하이닉스 지배력을 키우는 형태의 지배구조 개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최 회장이 대법원 판단을 받아보기 위한 상고를 예고한 터라 최 회장의 재산 분할금 마련을 위한 사업 재편은 당장 추진되거나 공개될 여지는 낮다. 또 비즈니스 논리에서 크게 벗어난 형태의 사업 재편 또는 지배구조 변화는 시장의 반발은 물론 현행 법 위반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터라 노골적으로 추진될 공산은 낮다.
에스케이그룹 쪽은 “각 계열사 이사회가 있는 만큼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사업재편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낮지만 적어도 큰 방향은 제시될 수 있다”며 “하지만 어떤 경우에서든지 그룹이 최 회장 개인을 위한 사업 재편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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