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레이더] 차출된 공보의는 언제 오려나…깊어지는 농촌 의료공백

정회성 2024. 6.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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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굽은 어르신, 1시간 이동해 진료"…기약 없는 차질에 주민들 시름
의정 갈등 전부터 농촌 의료는 '골병'…"정부·국회, 생존권 위협 막아달라"
공보의 파견에 휴진 안내문 붙은 농촌 보건지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100일 넘게 이탈한 전공의의 빈 자리를 농어촌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대신하면서 연쇄적으로 생긴 취약 지역 의료 공백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남은 공보의들이 순회·비대면 진료로 동료의 몫을 해내고 있지만, 환자들이 겪는 불편은 커져만 간다.

장기전으로 접어든 의정(醫政) 힘겨루기에 애꿎은 농어촌 주민들만 피해를 감수한다는 불만도 깊어졌다.

의정 갈등 사태와 무관하게 취약 지역 의사 부족은 이미 악화했다는 지표도 곳곳에서 노출되면서 지역 의료 기반 붕괴를 막을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온다.

메워지지 않는 공백…커지는 주민 불편

3일 전남도에 따르면 이날 현재 도내 공보의 229명 가운데 37명은 전공의가 이탈한 전국 각지 상급종합병원에 파견 중이다.

당초 4주만 버티면 될 줄 알았지만, 파견 기간은 거듭 연장됐다.

전남도는 농어촌 의료 공백이 날로 심각해지자 정부의 추가 파견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의사 부족의 대안으로 등장한 순회·비대면 진료도 현장에서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는 산간 지역이 많은 탓에 순회 진료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대부분 보건지소에서는 공보의 공백이 진료 시간 단축으로 이어졌다.

공보의 차출로 보건지소 '개점 휴업' [연합뉴스 자료사진]

충남에서는 현재 보건지소 2.4 곳당 1곳꼴로 공보의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나머지는 순회 진료로 메우고 있다.

금산군 제원·군북면 담당 공보의는 20㎞ 넘는 부리·남일면까지 출장 진료를 나가는 형편이다.

충북 한 보건지소 관계자는 "많을 때는 하루 30명의 환자가 몰린다. 공보의 1명은 매일, 나머지 1명은 다른 지소에서 일주일에 3번 출장을 와서 진료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구 군위군에서도 공보의 2명이 전체 7개 보건지소를 돌며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아파도 참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주민들이 되레 "피로도가 상당할 것"이라며 공보의들의 건강을 걱정할 정도다.

국내 '제2의 도시' 부산도 공보의 공백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인구 7천500여 명인 기장군 철마면의 유일한 의사도 공보의인데, 민간병원이나 약국이 없는 이곳 주민들은 두 달째 이어지는 의사 공백에 불편을 호소한다.

철마면 주민 최모 씨는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나도 비대면 화상 진료가 익숙지 않은데 어르신들은 오죽하겠느냐"며 "그나마 기저질환자들은 앞선 진료기록이라도 있으니 약을 이어서 먹을 수 있다. 어디가 새로 아픈 사람은 설명하기조차 난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 김모 씨는 "시내 병원으로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면서 1시간은 이동해야 한다. 동네에 가 보면 허리가 굽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어르신이 많은데, 그분들이 병원에 간다고 한들 편히 다니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자원 줄고 농촌 근무 기피…"농촌 의사 부족, 어제오늘 일 아냐"

의정 갈등에 의료 공백이 부각했을뿐, 열악한 농어촌 의료 현실은 공보의 파견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이미 지원자가 줄고 신규 배치 여력도 떨어져 이번 일이 잘 해결된다 해도 의료 인력 부족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전북에는 지난달 공보의 78명이 새로 배치됐지만, 114명이 복무를 마쳐 전체 숫자는 36명이 줄게 됐다.

전북 공보의 수는 2021년 373명, 2022년 357명, 지난해 325명, 올해 현재 288명으로 쭉쭉 떨어지고 있다.

충남에서는 올해 공보의 150명이 복무를 마치지만, 신규 전입은 103명에 그쳤다.

강원에서도 공보의 61명이 배정됐는데, 이는 지난해 101명보다 약 40% 적은 수치다.

공보의 차출로 진료 중단한 보건지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수도권인 경기 화성시에서도 비봉·우정·송산보건지소가 공보의 정원 감축으로 의정 갈등 사태와 무관하게 올해부터 진료를 종료했다.

충북 단양군의회는 최근 공보의 확대 배치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보건복지부 등에 전달하기도 했다.

단양군의회는 "지역의료 기반의 붕괴는 농촌 등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열악한 지역 의료 현실을 고려해 정부와 국회가 한마음으로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병역 대상인 인적자원 자체가 과거보다 부족해졌고, 열악한 처우 탓에 복무 기간이 절반에 불과한 현역병 입대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의료취약지 의사 공백 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는 사명감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근무 환경, 정주 여건 개선 등 의사들이 농촌에도 머무를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김선형 박세진 박주영 백나용 이상학 임채두 장지현 전승현 전창해 정종호 차근호 최해민 기자)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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