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 이요섭 감독 "강동원과 같이 만들어간 영화, 도움 많이 받았죠" [MD인터뷰](종합)
2009년 개봉 홍콩영화 '엑시던트' 원작
지난달 29일 개봉…배우 강동원 주연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설계자'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으로 갔을 때, 밝아진다기보다 빛이 많이 들어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밤에서 낮으로 가는 이야기죠."
이요섭 감독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설계자'(감독 이요섭) 개봉을 앞두고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설계자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 2009년 개봉한 정 바오루이 감독의 홍콩 영화 '엑시던트'를 원작으로 한다. 첫 장편 데뷔영화 '범죄의 여왕'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이요섭 감독의 8년만 신작이기도 하다.
이요섭 감독의 '설계자'는 원작을 접한 지 5년 만에 탄생했다. 이 감독은 "원작을 너무 좋아했다. 이 작품을 내가 쓴다는 마음, 팬심도 강했다. 원작 작가의 마음을 생각하며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고민이 되게 많았다"며 "쓰면서도 어떻게 하면 원작을 잘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고, 그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설계자' 자체가 주인공의 혼란을 다루는 작품이었고 나도 동일하게 혼란이 같이 오는 경험이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원작 '엑시던트'의 팬을 자처했다. 이야기의 끝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허무함, 외로움 그리고 어쩌면 '나도 평범한 인간처럼 살 수 있지 않았나'하는 고민의 순간들. 장르적임과 동시에 쓸쓸함과 외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가지고 싶었다. '설계자'의 대본을 쓰면서, 강동원과 '영일'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점을 놓칠 수 없었다. 장르물의 긴장감이나 스릴감과 함께 인간의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같이 담겨있다는 것은 서로가 좋아한 지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설계자'는 원작과 다르게 전개된다. 이 감독은 "원작을 좋아했지만 내가 똑같이 하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홍콩작품이기도 했다"며 "'굉장히 다르게 가야겠다'보다는 '요즘 세상이 어떻지'를 생각했다. 사고사를 조작하는 일들이 어떤 일인지 생각하고 사고부터 고민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적인 아이러니는 우연에서 생겨나는 플롯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 우연을 만드는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일의 눈을 통해서 캐릭터를 보고 싶었다"며 "원작에서는 도청이 안된다. '설계자'에서 도청을 넣은 건 인물들이 어떤 파편적인 순간에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나. 이 작품을 쓰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우연에 조금 포커싱을 바꿔보려 했다"라고 짚었다.
'설계자'에는 영일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의 아이디어도 많이 녹아있다. 영일이 쓸 것 같은 의상과 소품을 어느 정도 준비해서 깔아 두고 강동원이 직접 고르는 시간도 있었다. 전문가라는 인상에 '헤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의상 포켓의 개수 같은 사소한 디테일도 체크했다. 영일의 형상은 물론 그가 삼광보안 팀원들에게 가스라이팅을 했을 거라는 작은 설정까지. 깊은 계산과 함께 어떤 제안들이 요소요소 많았다. 이 감독은 "주연 배우랑 같이 만들어 나간 영화인지라 그런 부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 예시로 이 감독은 '영일의 방'을 꼽았다. 그는 "현장에서 이야기한 것과 강동원 배우님이 생각하신 것과 이미지가 약간 달랐다. 그때 재밌었던 게 배우님이 '이건 내 방이 아닌데'라고 하시더라"라며 "방에 들어오셔서 '난 이거 안 쓸 것 같다' 이러면서 싹싹싹 다 뺐다. 직접 본인이 방을 둘러봤다. 그것도 '우리 내일 방 찍어야 하는데 촬영 끝나고 리허설 한 번 하고 가시죠' 해서 들어오셨다가 소파에 앉아본 뒤 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품이) 막 널브러져 있던 게 예전에 짝눈과 있을 때의 콘셉트였다. 미술감독님은 생활감이 있는 공간에서 점점 그게 빠지고 영일이 자신의 집을 작업실처럼 쓰고 있다는, 이 사람이 언제든 이 집을 비워도 될 수 있게 세팅이 되게 점점 빼나 갈 계획이셨다"며 "(강동원이 뺀 것을) 미술감독님도 워래 다 뺄 생각이었다고 하시더라"라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설계자'를 보는 관객들은 짝눈과 영일이 왜 노네임(서류상으로 세상에 없는 사람)인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난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다. 이들 외에도 월천(이현욱), 재키(이미숙), 점만(탕준상)의 전사 또한 짧은 대사나 상황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많은 캐릭터의 전사가 생략된 이유는 원작을 본 이 감독이 조금 더 캐릭터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삼광보안 멤버들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영일의 플롯 안에서 조금이라도 넣고 싶었다. 원작에는 모든 인물의 과거 플롯이 제거된 상태다. 나는 서로 믿을 수 없는 공간에서 긴장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말들이 과연 진실일지 생각했다"며 "그 정보들을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 판단의 폭까지 캐릭터성을 늘리고 싶다고 생각해서 인물들의 파편적인 전사를 계속 뿌려놨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야기의 중반부 이후 영일이 모든 사람들을 강하게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과연 '그들의 말을 우리가 믿을 수 있나'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캐릭터들의 전사를 조금 더 심어놓은 지점이 있다"며 "영화를 볼 때 이들이 (말이나 행동이) 진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장르 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생각보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 지점이 아이러니할 수 있다 생각해서 캐릭터 디자인을 약간 그렇게 했다"라고 덧붙였다.
원작과 '설계자'의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사이버렉카 하우저(이동휘)의 존재다. 수많은 유튜버와 사이버렉카가 등장하지만 하우저는 그중 단연 관객들에게 의문을 선사한다. 하우저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그의 정체는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감독은 "하우저가 가진 포커싱 자체가 어떻게 보면 되게 다른 결이지만 영일의 근처에 있는 사건을 다룬다. 어찌 보면 하우저는 미디어를 불신하는 캐릭터다. '내가 최고야', '내가 가진 정보는 다 진짜야' 이런 착각에 빠진 인물일 수도 있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우연들이 쌓여가면 그게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산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영일이 놓여있는 상황이 그런 우연들이 쌓이는 확률을 높이는 환경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떻게 보면 하우저가 보도하는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와 영일 그 자체, 이 이야기의 핵심 포인트가 우연이라는 거에 맥락을 맞춘다면 인간이 맞추는 우연을 하우저한테 부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우저와 함께 '설계자'가 원작과 또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결말이다. 그 이유를 묻자 이 감독은 "이 이야기의 결을 달리 한 건, 원작에서 '주인공이 왜 이렇게 됐을까'가 내 시작이었다. 그 끝이 다른 점이 뭐냐면 나는 '시작'에 좀 더 집중했다. '영일이 왜 이렇게 됐을까'라거나 영일과 짝눈의 이야기라던가"라며 "마음에 의심을 심어놓는다는 것이, 원작의 주인공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의심이 반복되는 상태를, 시작이 된 그 근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짚었다.
이 감독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을 현대화해서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데이터를 찾다 보니 사고사로 사람을 죽이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 일이더라. 사람은 산 채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사고사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보다 이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면서 박살 내는 게 요즘 사회의 암살이 아닐까 싶었다"며 설명했다.
"미디어를 다루거나 인터넷 매체를 다루는 영화를 보면 '댓글 반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걸 약간 빼오고 싶었어요. 저는 영일이 댓글 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영일 스스로 사고사를 조작하면서 미디어에 관심이 많잖아요. 결국 미디어에 자신이 비친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상황인지 느끼게 해주는 것이, 원작을 현대화했을 때 영일에게 필요한 공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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