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프라이'로 시작된 상속분쟁…"부자들만의 이야기 아냐"

김근욱 기자 2024. 6. 3.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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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실버의 大상속]③누구나 겪는 상속, 준비 없으면 '분쟁'으로…"유산 적을수록 분쟁 가능성 커"
하나·신한은행, 상속신탁 라운지 열고 '대중화' 박차…유언장 작성 체험도
서울 강남구의 '하나시니어라운지'에 전시된 유언장 양식 / 뉴스1 ⓒ News1 김근욱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한 세기 가까운 인생을 살아오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떠날 때가 다가오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집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부모로서 항상 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평생 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잘 지켰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내가 없을 때에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보듬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지난 28일 방문한 서울 강남구의 '하나 시니어 라운지' 입구엔 유언장이 전시돼 있었다. 그는 "내 인생을 스스로 정리하고자, 훗날 내가 없을때 벌어질 미연의 상황을 예방하고자 미리 유언장을 쓴다"고 했다. 유언장 아래에는 자신의 아들과 딸, 배우자를 향한 재산 분배 내용도 담겨 있었다. 물론 전시를 위해 창작된 유언장이었지만, 고심이 느껴지는 글에 기자의 마음도 숙연해졌다.

고령층의 자산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대(大)상속시대'가 예고되면서 국내 은행들이 상속신탁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속 준비'가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속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부모의 재산을 탐하는 부도덕한 행위로 인식되는 탓에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경향이 크다. 은행의 상속신탁 서비스 역시 '부자들의 전유물'로 인식된다. 그러나 금융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상속은 부(富)와 무관하게 누구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누구나 겪는 상속, 준비 없으면 '분쟁'으로

상속 분쟁은 '도시락 계란프라이 하나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재산을 똑같이 나누더라도 "어렸을 때 오빠 도시락에만 계란 후라이 하나가 올려져 있었으니 공평하지 않다"며 갈등이 일어나는 형태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관계라도 상속 분쟁이 발생하면 소송까지 이어지기 십상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재산의 분할에 관한 처분' 접수 건수는 2014년 771건에서 2022년 2776건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소송은 감정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법적 소송에 돌입하는 순간 모든 자산은 동결된다. 그러나 상속세는 상속개시일 6개월 이내에 납부해야 한다. 대부분의 상속 소송은 수년간 이어지기 때문에 빚을 내 상속세를 내는 상황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최충일 신한은행 신탁솔루션 부부장은 "상속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한다"고 말한다. 돈과 관련된 민감한 주제인 만큼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필연적인 일이기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부부장은 "만약 상속 분쟁이 발생한다면 형제들끼리의 감정의 골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세금은 세금대로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상속을 미리 준비하는 문화가 생겨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충일 신한은행 신탁솔루션부 부부장이 3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신한은행 신탁라운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5.3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 "상속신탁, 부자들의 전유물 아냐"

상속 분쟁이 부자들에게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유산액이 적을수록 상속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국보다 먼저 '대상속시대'에 접어든 일본의 유산분할 사건의 금액별 비중을 살펴보면 1000만엔(약 8700만원) 이하 비중이 전체의 32.9%, 5000만엔(약 4억4000만원) 이하 비중이 전체의 76.7%를 차지했다.

특히 1000만엔 이하에서는 유산에 부동산이 포함되는 경우가 46%에 달했다. 박지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유산액이 적을수록 부동산 비중이 높은데 이는 부동산 매각에 대한 상속자간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아 유산분할 사건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하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가족 간 상속 분쟁을 줄일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 '유언대용신탁'이라고 설명한다. 유언대용신탁은 고객이 은행에 재산을 맡기면, 생전에 정한 비율 대로 상속자에게 분배하는 상품이다. 갈등의 중심이 되는 부동산의 관리와 처분까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 센터장은 "상속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간의 이견은 당연히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탁제도를 활용하면 금융기관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재산을 분배하는 집행의 기능으로 재산의 이전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은행권, 상속신탁 '대중화' 나섰다

은행권은 국내 상속신탁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대중화'에 주력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서울 강남구에 상속 관련 서비스를 위한 공간인 '하나 시니어 라운지'를 오픈하고 이곳에서 유언장 작성 체험 간담회를 개최했다. 일본에선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유언장 격인 '엔딩노트'를 쓰는 문화가 이미 자리잡았다. 유언장 작성은 상속 준비의 시작이다.

신한은행도 지난달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 상속 특화 신탁라운지를 개설했다. 눈여겨볼 점은 신한은행이 '기부' 형태의 상속신탁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객이 은행에 재산을 맡기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산을 관리하다 사후 원했던 곳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최근 생전에 축적한 재산이 의미있게 사용되기 원하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기부신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한다. 실제 허재일 건국대 명예교수는 신한은행과의 신탁계약에 따라 사후 건국대에 발전기금 8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유언대용신탁 누적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약 3조200억원으로, 2022년 말 2조원대에서 약 1.5배 불어난 상태다. 이경훈 우리금융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국내에서는 상속신탁에 대한 인식이 유언대용신탁 위주로 형성돼 있으나 최근 은행에서 다양한 상품·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며 "현재 최소 가입금액이 5000만원~10억원 등으로 다소 높게 형성돼 있지만 향후 상속신탁 문화가 대중화될 경우 보급형 상품 출시도 확대될 전망이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하나시니어라운지' 전경 / 뉴스1 ⓒ News1 김근욱 기자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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