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비대화’ 비판하더니 똑같이 따라하는 윤석열 정권

문상현 기자 2024. 6. 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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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실장·5수석 체제로 출발한 대통령실은 3실장·8수석까지 몸집을 불리게 됐다. 정책실장의 존재감이 특히 커졌다. 관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5월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해외 직구 논란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통령실이 브리핑을 열고 정책과 국정 현안에 대응하는 일이 최근 부쩍 늘었다. 물가와 성장률 등 경제 현안부터 ‘라인-야후’ 및 해외 직구(KC 미인증 해외 직접구매) 차단 논란 등 굵직한 현안들이 다뤄진다. 브리핑은 성태윤 정책실장이 직접 담당한다. 대통령실 주장과 입장이 성 정책실장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최근 민생물가 태스크포스(TF)와 국가전략산업TF를 신설했다. 민생물가TF는 물가 대응을 위해, 국가전략산업TF는 반도체 등 핵심 주력산업 성장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경제수석실과 사회수석실, 과학기술수석실 산하 비서관들이 간사를 맡고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부처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사회 부처, 과학기술 부처,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한다. 성태윤 정책실장이 두 TF를 지휘하고 있다.

정책실장은 대통령실 참모들을 이끄는 3축(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 중 하나다. 정책실장이 국정 현안과 정책을 지휘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다만 윤석열 정부 들어 정책실장의 존재감이 최근만큼 커지고, 정책실장이 직접, 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4·10 총선 이후 한 달여 만에 3기 대통령실 체제가 꾸려지면서 생긴 변화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7일 민정수석 신설, 5월13일 저출생수석 신설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은 3실장(비서실·정책실·국가안보실), 8수석(정무·홍보·시민사회·경제·사회·과학기술·민정·저출생)으로 확대 개편됐다. 8수석 가운데 절반인 4수석(경제·사회·과학기술·저출생)이 정책실 산하다. 정책과 국정 현안 추진의 그립을 대통령실이 쥐겠다는 뜻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새로 임명된 비서실장(정진석 비서실장)과 정무수석(홍철호 정무수석)이 정치인 출신이라 기존보다 정무 기능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면서 정책실 역할이 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권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실(청와대) 조직을 보면 당시 정부들이 어디에 힘과 중심을 뒀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조직 개편은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가 되어 직접 국정 현안을 챙기고 부처 간 정책 조율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총선 이후 대통령실 내부에선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윤석열 정부의 정책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불거진 해외 직구 차단 정책과 같이, 고질병처럼 반복되고 있는 대통령실-정부 부처 간 정책 혼선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경제 안보, 반도체 공급망 등 현안들은 여러 부처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고, 여기에 대통령실의 역할이 있다는 공감대도 만들어져 있다. 그 밖에 일부 정부 부처에서는 여소야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야당(더불어민주당)과 대화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책 추진 의지가 약해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점, 이에 따라 관료들의 복지부동이 심해지고 있다는 비판 등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가에서는 대통령실과 다른 우려가 나온다. 오히려 그동안 대통령실이 지나치게 나서면서 정부 부처들의 정책 대응력과 입지가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이 저출생부터 물가(민생물가TF), 반도체(국가산업전략TF)까지 직접 챙기기 시작하면서,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가 정부 부처들의 존재감 하락을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의 ‘기획재정부 패싱’ 논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 축사에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겠다”라고 깜짝 발표했다. 문제는 금투세 폐지가 올해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담은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는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초 기재부가 진땀 뺀 이유

〈시사IN〉 취재 결과 ‘경제정책방향’을 준비해온 기재부에서는 지난해 12월 말까지도 금투세 폐지를 논의하지 않았다. 2022년 국회에서 여야가 금투세 시행 시기를 2025년까지 유예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기재부는 윤 대통령의 발표 한 시간 뒤 열린 ‘2024년 경제정책방향’ 발표 브리핑에서 진땀을 빼야 했다. 지난해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과세 기준 상향, 불법 공매도 금지 같은 계획도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준비가 덜 된 상황에 ‘대통령실 관계자’를 통해 공개되면서 같은 논란(경제 부처 패싱)이 불거진 바 있다. 한 전직 경제 부처 간부는 “대통령이 기재부 세제실장처럼 세세하게 챙기니 부처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저출생 관련 부처와 수석실 설치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으로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대응기획부’를 신설해 저출생 정책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맡긴다는 구상을 5월9일 먼저 밝혔다. 이후 5월13일 대통령실에 이를 전담할 컨트롤타워(저출생수석) 신설을 지시했다. 부처 신설은 정부조직법 개정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저출생수석부터 임명해 정책을 챙기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부처가 신설되더라도 대통령실 전담 조직과 기능, 업무 등과 중첩돼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관 부재로 사실상 부처 기능이 정지된 여성가족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1월2일 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했다.ⓒ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정부 부처의 과장급 인사까지 챙기면서 잡음이 나오기도 한다. 정부 부처는 지난 2월 초 국·과장급 간부 대상 정기 인사를 순차적으로 단행했다. 고위 공무원은 대통령실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검증하고 확인하지만, 과장급 간부 이하는 각 부처에서 총괄해왔다. 그러나 주요 부처의 핵심 과장 보직 인사를 대통령실에서 결정하고 있다는 게 경제 부처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있거나 윤석열 정부 철학을 이해하는 인사들을 배치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통령실이 지난해 대통령실 비서관들을 차관으로 임명하면서 ‘장관 패싱’ 논란도 불거진 바 있다. 그 밖에 부처는 물론 외청들의 개별 브리핑과 보도자료 배포 시점까지 대통령실이 일일이 간섭한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관가에서는 정책실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실 역할과 기능 강화, 조직 확대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권력 누수를 막고 공직 기강을 세우기 위해 대통령실이 그립을 더 세게 쥔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실 조직 확대 개편에 민정수석 신설이 포함된 이유를 여기서 찾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의 ‘비대화’ 자체가 국정 장악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한다. 애초 윤석열 정부는 2실장(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정무·홍보·경제·사회·시민사회) 체제로 출범했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한다며 대통령실 조직 슬림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대통령실 규모가 점차 커졌다.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부처 간 정책 조정을 담당하는 ‘정책기획수석(국정기획수석)’을 신설해 2실장 6수석으로 확대 개편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정책실장직을 부활하고 과학기술수석을 신설하면서 ‘3실장 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민정수석실과 저출생수석실 신설을 담은 이번 조직 개편이 마무리되면 ‘3실장 8수석 체제’가 된다. 비서실 규모만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비대화’를 비판하며 지적했던 문재인 정부 청와대(3실장 8수석)와 같은 규모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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