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이자 제작자이자 연기자, 브랜드 마동석의 탄생
홍콩 출신 배우 청룽(성룡)은 연기자 겸 영화감독 겸 제작자다. 100편 넘게 영화에 출연했고 주연이면서 제작을 한 작품도 15편이 넘는다. 국내 개봉한 그의 가장 최근 작 〈라이드 온〉은 지난해 〈범죄도시 3〉과 같은 시기 극장에 걸렸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기획, 제작, 연기한 배우 마동석은 과거 인터뷰에서 ‘성룡 영화’가 부럽다고 말했다. 성룡이 만든 영화에는 성룡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영화도 만들고, 연기도 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기획도 하면서 배우로서 연기도 계속하고 싶다.” 방법론으로 ‘마동석식 액션’을 말했다. 알려졌다시피 〈범죄도시 3〉에는 1000만 관객이 들었다. ‘롤모델’과의 대결에서 일단은 크게 이겼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세 번째 1000만 관객을 달성했다. 4월24일 개봉한 지 22일 만이다. 2017년 개봉한 1편에 관객 688만명이 몰렸고 2~4편 모두 1000만명 넘게 극장을 찾았다. ‘트리플 천만’은 한국 영화 최초이고 해외 영화까지 포함하면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유일하다. 마동석은 〈범죄도시〉 이전부터 할리우드의 〈록키〉나 〈람보〉 시리즈 등 일명 ‘프랜차이즈 영화’에 대한 바람을 내비쳤다. 지금 그 꿈을 이루는 중이다.
2017년 개봉한 〈범죄도시〉는 마동석과 강윤성 감독이 기획에만 4년을 매달린 작품이다. 서울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금천서 강력반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기획 단계부터 8편짜리 시리즈를 구상했다. 투자자와 제작사에 시나리오를 보여주었지만 더 이상 이런 유의 형사물이 통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마동석이 약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마동석이 빌런인 장첸 역을 하고 형사 역에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일단 영화를 살리고 볼지, 목표한 대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투자사의 제안을 거절한다.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3~4년이 더 걸렸다. 형사 마석도가 그렇게 탄생했다. ‘형사물이라기보다 마동석 캐릭터의 슈퍼히어로물(황진미 평론가)’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악당들이 마석도의 손짓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그런 한편 팔 근육이 너무 커 본인 팔꿈치의 상처를 살피지 못하는 의외의 장면이 웃음을 주었다.
마석도는 곧 마동석이다. 빌런의 특성과 캐릭터는 회마다 바뀌지만 그 빌런을 타도하는 마석도 캐릭터는 계속된다. ‘캐릭터 배우’를 지향한다는 마동석의 말에 힌트가 있다. 그가 종종 예로 드는 배우는 레슬링 선수 출신인 드웨인 존슨과 스티븐 시걸이다. 배우가 영화 속 캐릭터 그 자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맨손으로 좀비를 때려잡는 시민(〈부산행〉)도, 우주 생명체를 주먹 한 방에 날리는 길가메시(〈이터널스〉)도 이름은 다르지만 마동석 자체다. 송상호 영화평론가는 “마석도는 마석도로서만 존재한다기보다는 영화의 제작자이자 주축으로서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마동석의 분신처럼 기능한다”라고 분석한 바 있다. 마동석 스스로 일종의 장르가 되어 그가 출연한 영화를 두고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마동석은 다작 배우다. 서른셋,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한 이래 20년 동안 단편영화를 포함해 영화 67편에 출연했고 드라마 14편을 찍었다. 최근 ‘마동석 특집호’를 낸 〈씨네21〉에 따르면 장편영화 개봉작 중 주연작이 36편이다. 1000만 영화 여섯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마동석은 유명 연예인의 트레이너 출신이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 간 뒤 아시아계라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운동을 시작했고 보디빌더가 되었다. 이종격투기 선수 마크 콜먼의 트레이너를 맡기도 했다. 배우가 되고 싶어 로스앤젤레스(LA)에서 오디션을 보던 즈음, 연예기획사에 있던 초등학교 동창의 추천으로 〈천군〉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 한국에 왔다.
마동석은 배우 인생의 전환점으로 2007년 방영된 드라마 〈히트〉를 꼽는다. 형사 역할 조연을 맡았는데 이때 구축한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연기 이력 내내 이어진다. 당시 도움을 얻기 위해 만난 형사들과 친해져 취조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보고 들은 걸 짜깁기한 인물이 〈범죄도시〉의 형사 마석도다. 마동석의 배역은 다수가 전현직 조폭이자 사채업자(〈비스티 보이즈〉, 2008), 형사(〈나쁜 녀석들〉, 2014)였고 괴력의 사내(〈부산행〉, 2016), 가택신(〈신과 함께〉, 2018), 조폭 출신 주방장(〈시동〉, 2019), 마블 영화 최초의 한국인 히어로(〈이터널스〉, 2021)도 있었다. 대중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재미라고 생각하는 그는 역할에 잘 녹아들 수 있다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학과 학생들의 졸업 작품 같은 ‘작은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는 제작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이다. 일례로 〈베테랑〉 촬영 당시 좀 더 비중 있는 역할에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스케줄 때문에 어렵게 되자 단역이라도 하겠다고 나선 마동석이 현장을 둘러보다 즉석에서 ‘아트박스’ 상호를 영화에 써도 되는지 확인한 다음 “나 아트박스 사장인데” 대사를 완성했다고 알려졌다. 기획력이 제작자를 넘어선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왔고 제작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났다. 시나리오 기획 등을 하는 콘텐츠 회사 팀고릴라를 꾸리고 2015년 첫 영화 〈함정〉을 선보였다. 현재는 영화사와 매니지먼트사를 비롯해 복싱클럽을 운영 중이다. 사명에 모두 ‘빅펀치’가 들어간다.
100㎏의 체구, 트레이드마크가 되다
기획도 하고 제작도 하고 연기도 하는 마동석은 그간 한국 영화계에서 볼 수 없던 포지션을 획득했다. 브랜드로서 ‘마동석의 탄생’이기도 하다. 〈범죄도시〉 1편이 개봉될 당시, 기획에만 참여했지 제작을 한 건 아니라던 그가 2편부터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배우가 제작을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어서 1편에는 이름을 안 넣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해외 범죄 조직을 다룬 〈범죄도시 2〉를 통해 ‘스케일을 키우고 세계관을 구축’했다. 코로나19로 영화계가 모두 힘들었을 때 개봉을 감행해 1000만 관객을 모았다. 3편은 서울 광역수사대로 발탁된 마석도가 마약 사건의 배후와 싸우는 이야기다. 4편은 온라인 불법도박 시장을 소재로 한다. 대중은 네 편을 통틀어 1편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지만(네이버 평점 기준)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의 말대로 이제 “살짝 스치기만 해도 〈범죄도시〉 시리즈는 흥행에 성공하는 핵펀치가 된 듯하다".
처음 연기를 할 때만 해도 체구 때문에 역할이 한정적이라 배우 하기 힘들 거라는 말을 많이 들은 마동석은 178㎝, 100㎏의 체구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들었다. 굵은 몸이 아닌 마동석을 이제는 상상하기 힘들다. 〈범죄도시 4〉 허명행 감독의 표현대로 마동석의 액션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무력화한다. 14세부터 복싱을 한 그는 복싱의 여러 테크닉을 액션으로 연결시켰다. 해외 관객과 영화사의 러브콜을 많이 받는 이유에 대해 마동석은 할리우드를 흉내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격투기 챔피언이나 복싱 국가대표 선수 출신을 기용하는 등 투박하지만 실감나는 액션을 구현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그가 말한 마동석식 액션의 본질이기도 하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빈약하고 단순한 서사는 대중성에 관한 한 약점이라기보다 경쟁력이다. 송형국 영화평론가는 ‘경험이 검증한 매끄러움’과 ‘제 역할 하는 강력한 공권력’이 관객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맥락은 느슨하지만 어쨌든 악당들이 나가떨어지고 현실과 반대로 결국 선이 승리한다는 서사에 한 편당 전 국민의 20%가, 누적으로는 80%가 극장을 찾았다는 점은 영화의 만듦새와 별도로 좀 더 분석해볼 만한 ‘현상’이다. 8편까지, 이제 절반 왔다. 익숙함과 식상함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고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남아 있지만, 마석도, 아니 마동석의 체력만은 아직 거뜬해 보인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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