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유선희가 만든 '찬란한 내일로' 소주 신 "중요한 건 '원샷'"
거장 난니 모레티 감독이 선택한 배우 유선희가 '연기'에 담은 것
"소주라는 한국 술이에요. 두 손으로 잔을 들고 단번에 넘기세요. 먼저 잔을 부딪치고, '건배'라고 외쳐 주세요. 건배!"
인생의 위기, 영화의 위기 앞에 우울해했던 조반니 감독(난니 모레티)은 가까스로 재개된 영화 촬영을 위해 촬영장으로 걸어간다. 그런 조반니에게 한국인 통역사는 한국의 전통이라며 축배를 들자고 한다. 소주잔을 건네받은 조반니는 두 손으로 소주잔을 경건하게 들고 "건배!"를 외치며 원샷 한다. 이탈리아 영화 안에서 펼쳐진 광경이다.
이탈리아 거장 난니 모레티 감독의 영화 '찬란한 내일로' 안에서 소주잔을 건네며 건배와 원샷을 알려주는 한국인 통역사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이번 작품으로 '연기'라는 또 다른 예술에 첫 발을 들인 유선희다.
한국 배우 최초 이탈리아 영화 출연이라는 새 역사의 한 줄을 쓴 유선희는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역사까지 추가했다. 독특한 이력의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건 유선희가 가진 예술가로서 쌓아온 깊은 내공이었다.
'찬란한 내일로'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유선희는 영화에서 보인 모습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자 아티스트였다. '신인 배우'이지만 그에게서는 이미 완숙한 '예술가'로서의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거장의 마스터피스 안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데뷔작으로 칸 밟은 신예 유선희
데뷔작으로 칸을 거쳐 이탈리아 사람들을 사로잡고 이제 한국 관객들 앞에 작품을 선보일 일만 남았다. 생애 첫 칸 방문 때는 '다른 별'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자신을 비롯한 배우, 스태프가 "다 같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인가" 싶었다.
상영 후 레드카펫도 평범하게 내려오지 않았다. 영화 속 음악인 이탈리아 영화제작자이자 싱어송라이터 프랑코 바티아토의 'Voglio Vederti Danzare'(춤추는 모습 보고 싶어)에 맞춰 춤을 추며 내려왔다. 유선희는 "정말로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개봉에 앞서 한국을 내한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순간도 그에게는 특별한 순간이다. 지금의 상황이 영화 속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인 '한국인 통역사' 역할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선 통역사가 그냥 언어만 통역하는 역할이 아니라 일종의 대사(大使) 같은 역할이다. 다른 두 문화와 나라를 연결하는 중개역"이라며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이탈리아 영화를 한국 관객에게 알리는 거다. 영화 역할을 연장해서 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배우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우연한 계기로 받아들인 배우 제안, 이어진 난니 모레티 감독 영화 오디션이 유선희를 지금으로 이끌었다. 오디션을 거쳐 거장의 부름을 받게 된 그는 '최초' '처음'이라는 설레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
유선희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하게 된 기회도,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라고 했다.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운을 붙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전 한국인이에요.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아서 한국인이지만 이탈리아 사람 같고, 이탈리아 사람 같지만 나는 한국인이라는, 그런 저만의 정체성을 찾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런 걸 음악으로 시도하는 거죠. 클래식을 하면서도 재즈나 팝, 일렉트로닉 등 다른 뮤지션과 콜라보도 많이 하고 다른 장르 음악도 시도해요. 그래서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즐거웠어요. 다른 분야를 한다는 것보다 예술 영역의 연장이라 본 거죠."
연기 경험은 없지만, 누구보다 깊고 강력한 자신만의 경험이 있었다. "통역사 역할 자체가 중개 역할"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이면서 이탈리아인인 자신만의 이야기에 충실한 것 자체가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그런 식으로 연기하는데 감독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던 거 같았다"라며 웃었다.
찬란했던 유선희의 '찬란한 내일로' 현장
난니 모레티 감독의 현장은 영화 속 조반니 감독의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자기만의 확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영화에서처럼 한 신을 찍을 때마다 만족할 만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카메라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감이 오면 즉석에서 대사를 바꾸거나 다른 것들을 시도한다.
유선희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래서 힘들기도 했다"라고 웃으며 "감독님 자신이 영화에 반영됐고, 또 항상 그런 영화를 만드셨다. 감독님은 '내 자신이 반영된 영화밖에 만들 수 없고, 이게 나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굉장히 완벽주의자다. 디테일한 부분에 굉장히 완벽을 추구하신다"라며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찍으면서 '우리 생각에는 된 거 같아!' 그랬는데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게 '대가'가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국내 관객들이라면 놀라우면서도 반가운 장면인 이른바 '소주신'은 유선희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장면이다. 촬영 전날 축배를 드는 신을 받아 든 유선희에게 난니 모레티 감독이 연락해 한국인들이 축배를 들며 잔을 부딪칠 때 그건 특별한 잔인지, 아니면 조그만 양주잔으로도 괜찮은지 등을 물어봤다.
유선희는 단호하게 "한국 사람에게 소주는 소주잔이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집에 있는 소주잔을 들고 촬영장에 갔고, 감독이 유선희에게 다가왔다. "그 신을 찍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감독님이 저한테 오시더니 '네가 한국 사람이고 한국 문화를 잘 아니까 최대한 한국적인 걸 네 마음대로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그러면 소주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치는 거였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원샷'. 원샷을 꼭 해야 한다고 했어요."(웃음)
그렇게 난니 모레티 감독과 함께 만들어간 '찬란한 내일로'는 여러모로 특별하고,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 축인 한국에서 관객들과 만날 순간만을 남겨두고 있다. 유선희는 자신 있게 "즐겁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했다. 그는 '찬란한 내일로'가 "한 사람의 이야기"라며 "세상 사는 이야기는 다 똑같다. 일도 삶도 되는 게 하나도 없고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꿋꿋이 나아가다 보니 긍정적인 일이 생긴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그러면서 "맨날 좋을 수도 맨날 나쁠 수도 없다. 안 좋은 일이 있고 힘들 날이면 낙담하면서 '난 왜 이럴까?' '내 인생을 왜 그럴까?' 한다. 조반니도 그렇다. 그렇지만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일은 찬란한 내일이지 않을까 기대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난니 모레티 감독의 좋은 영화가 정말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면 좋겠어요. 관객분들도 '찬란한 내일로' 속 사람 사는 이야기를 보면서 세상 사는 거 다 똑같다며 희망을 품으실 수 있으면 해요."(웃음)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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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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