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반대" 100일 넘게 보이콧 하다…'의사 철옹성'에 금갔다

구단비 기자 2024. 6.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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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넘긴 의정갈등…'의대 증원 투쟁' 의료계가 놓친 것들(1)/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을 넘겼다.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의료계의 묵은 난제를 해결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PA(진료지원)간호사 합법화, 외국의사 채용 등 그간 의료계가 반대해왔던 정책들이 의대증원 갈등 속에서 추진되는 모양새다.

3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의 입법예고 기간 동안 제출된 의견을 검토해 공고했다. 이번 개정에는 보건의료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에 올랐을 경우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도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는 내용이 담겼다.

복지부는 공고를 통해 외국의사 진료 허용에 대해 "보건의료 재난위기 심각 상황에서 국민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이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이고 보완적인 조치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정부는 세부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PA간호사, 외국의사…'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라는 인식
그간 의사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일하는 인력으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전공의의 미복귀가 장기화하면서 외국의사의 진료 허용, PA간호사 합법화 등이 논의되면서 의사도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의료계가 가장 극심히 반대했던 PA간호사도 이번 의료공백 속 큰 역할을 했다. PA 간호사는 수술 보조,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시 보조 등 법의 경계선에서 의사 의료행위 중 일부를 해왔다.

최근 21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PA간호사 합법화 등의 내용이 담긴 간호법 제정은 추진되지 못했지만, 정부는 제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박민수 차관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22대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행 시기를 단축하는 방안도 논의해 조속히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의사만 할 수 있는 일?'…무너지는 의료 직역 칸막이
견고했던 의사 역할에도 틈이 생겼다. 복지부가 지난 3월 발주한 '문신사 자격시험 및 보수교육 체계 개발과 관리 방안 마련 연구'는 오는 11월 최종 연구 보고서로 결실을 볼 예정이다.

문신은 한국에서만 의료행위로 규정돼있어 오랜 기간 합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한국의 비의료인 문신 시술자는 2021년 기준 35만 명 정도로 파악된다. 최근에는 눈썹, 입술 등 반영구 화장 시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신 합법화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우호적으로 바뀐 상황이다.

용역 연구 결과는 추후 정책 수립에 활용될 수도 있어 문신 합법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또 미용의료 시술 자격 개방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의사가 하지 않으면 불법이었던 문신, 보톡스 등도 외국처럼 문신사, 간호사 등에게 개방될 가능성이 생겼다.
'정부와 대화하지 않겠다'…미래 의료 발전 논의 불참한 의료계
100일 넘긴 의정갈등…'의대 증원 투쟁' 의료계가 놓친 것들(2)/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이처럼 정부가 PA간호사, 외국의사 진료허용, 시술 자격증 논의 등을 비롯해 미래 의료 발전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보이콧 중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의료개혁 4대 패키지 중 하나인 의대 증원에 반발한다는 이유로 그 외 어떤 논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대통령 직속으로 의료개혁특위를 출범시켰지만,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증원 백지화'를 조건으로 참석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의 자리를 비워뒀다"며 꾸준히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의료개혁특위는 의료인력 전문위원회,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 필수의료·공정보상 전문위원회,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 등 4개의 전문위를 두고 △전공의 부담 완화 △의료분쟁 조정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
'라포'는 어디로…'잃어버린 환자들과의 신뢰'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관계를 뜻하는 '라포'는 신체 접촉과 의료정보 공유가 이뤄지는 의료 현장에서 소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환자단체는 의료계가 의대 증원 반대 투쟁 속에서 환자들과의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9개의 환자단체가 속해있는 환자단체연합회의 안기종 회장은 지난달 29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심포지엄에서 "100일 동안 환자들은 버텼다"며 "(수술이) 연기돼 암이 재발해서 다시 항암치료에 들어간 환자도 있다. (전공의가)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인내해온 환자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안 회장은 "5년 전엔 환자단체도 PA간호사 반대했는데 이젠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복귀하지 않으면) 한의사·약사·간호사 등 다른 직역도 의사의 영역을 하나하나 달라고 할 것이고 국민들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상호 선천성심장병환우회장도 같은 날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는 것, 의정 갈등에 생명을 잃지 않는 것"이라며 "고래는 새우를 위한 싸움이라고 하지만 새우는 고래들의 볼모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더 이상 파업으로 환자가 피해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구단비 기자 kd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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