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지금 파업할 때인가?
2만 8000여명의 조합원 중 대부분이 DS(디바이스솔루션: 반도체 등) 부문으로 구성된 전삼노의 파업이 심화될 경우 반등의 기미를 보이던 반도체 실적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약 638만명이었던 삼성전자 주주들은 1년이 지난 올 3월 약 521만명으로 110만명 이상이 줄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부진한 실적(약 15조원의 적자)에 실망한 주주들이 주식을 팔고 떠난 영향이다.
전삼노는 이달 7일 조합원들에게 집단 휴무를 신청해 '연차파업'에 들어갈 것을 독려하고 있다. 7일이 '샌드위치데이'인데다 회사 측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장려한 '패밀리데이'여서 상당수의 직원들이 쉴 것으로 예상된다. 예고된 휴무인만큼 단기적으로 생산차질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교대근무 체제인 반도체 라인에서 통상 휴무인력인 전체의 30% 이상이 쉴 경우 생산차질도 우려된다.
재계에서는 현재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기준변경이 기업경영의 영역으로 노사협상의 대상이 아님에도 이를 빌미로 파업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구체적 요구보다는 '노동존중'이라는 추상적 안건을 파업 명분으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성과급 지급기준의 투명성을 파업명분으로 내세웠다. 손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성과급 관련 EVA(Economic Value Added·경제적 부가가치) 기준은 직원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올해 DS에서 영업이익이 11조원이 나더라도 사측은 EVA 기준으로 성과급 0% 지급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도 "LG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영업이익을 성과급 지급 기준으로 한다"며 "영업이익이라는 투명한 기준이 정해지면 이러한 직원들의 불만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 듯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생소한 개념인 EVA보다는 매분기 실적 발표 때 명확한 수치로 나오는 영업이익은 쉽게 와 닿을 수 있다. 또 그 영업이익이 11조원이나 났는데 초과이익 성과급(OPI)이 없다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내부 사정과 재무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선 OPI(Over Performance Incentive: 구 PS:Profit Sharing)와 EVA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OPI(초과성과인센티브)는 회사가 세운 목표를 초과한 경우 지급하기로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제도다. 이미 연봉계약을 통해 임금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목표를 넘어선 초과성과가 없으면 인센티브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11조원이라는 돈이 일반인들에게는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삼성전자 DS 부문에서는 적은 돈이다. 첨단 반도체 라인 하나를 짓는데에만 30조원 가량이 든다. 11조원이 남았다고 성과급으로 나눠주고 나면 미래는 없다. 안정적인 미래투자와 주주가치 제고의 재원이 없으면 영업이익이 나더라도 성과급은 못 줄 수 있다.
반대로 훨씬 낮더라도 회사가 설정한 목표를 초과달성한다면 OPI는 당연이 지급될 수 있다. 이는 회사 경영진들의 전략의 문제다.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투자자금이 필요하고, 주주에게 배당은 어떻게 할 것이며, 직원들에게는 어떻게 성과급을 줄 지는 자원의 분배전략이다.
영업이익이 많이 나더라도 환차손 같은 영업외 손실이 커지면 순이익은 적자가 날 수도 있다. 단순히 영업이익 기준으로 성과급을 달라는 얘기는 회사의 순이익이 적자여도 성과급을 달라는 얘기와 같다.
EVA는 당기순이익(또는 세후영업이익)에 투하자본(타인자본+자기자본)에서 얻을 수 있는 최저수익을 뺀 가치다. 회사에 돈을 댄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주주중심 평가툴이다. 회계상 순이익이 나더라도 EVA가 마이너스이면 기업은 채산성이 없고, 투자할 가치도 없는 회사가 된다.
삼성의 경우 전 그룹 차원에서 정해진 규칙이 있다. 삼성그룹은 과거 요구수익률 14%를 기준으로 EVA를 계산해 성과평가 및 보상결정에 사용해왔다.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는 장치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투하자본 대비 14%의 요구수익률을 넘어서야 EVA가 플러스로 돌아선다. 한창 잘나갈 때는 많겠는 초과분의 25%를 성과보상의 재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최근 보상체계 기준을 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꾼 SK하이닉스의 경우 영업이익의 10% 범위 안에서 초과이익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다양한 변수들이 포함돼 있어 정확하게 자신이 얼마를 받을 지 종업원들이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또 다른 문제는 영업이익의 허점에 있다. 일반적으로 영업이익은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실제 들어온 돈은 '영업활동 현금흐름'에 표기된 금액으로 이는 영업이익과 차이가 난다. 실제 영업이익은 앞으로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상의 금액으로 재고자산이 늘어도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착시효과도 빈번하게 있다.
삼성전자가 5.1%의 임금인상률을 제시한 것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전삼노 측은 자신들도 회사의 인상안을 거의 수용했는데 다른 조건에서 '서초(사업지원T/F)의 반려'로 타결이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부회장)에게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 사측의 형태는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며 파업을 선언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삼성전자 500만의 주주들 입장에서는 쉽게 수긍하기 힘든 논리다. 지난해 평균 1억 2000만원(2021년 평균 1억 4400만원)을 받는 직원들에게 올해 5.1%의 임금을 올려줬는데 노조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업한다는 것은 논리가 옹색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등 타 상급노조까지 끌어들여 파업열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결국 노조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기업을 노동운동을 하는 정치판으로 만들려는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위기상황이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약 15조원의 적자를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AI 대변혁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경쟁사인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에도 뒤진 상황이다. 노조는 이를 경영진의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삼성전자의 위기는 'CEO는 CEO만큼, 직원은 직원만큼' 각자 자기 위치에서 일정부분의 책임이 있다.
삼성전자의 미래 투자 재원을 성과급으로 나눠 갖고 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면 삼성전자가 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호황을 누린 삼성전자가 망하는 것은 2~3년이면 족하다는 것은 과거 역사가 말해준다.
삼성전자는 1993년 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에 올라선 후 1994년 세계 최초 256M D램을 개발하고, 1995년에는 영업이익 2조 7000여억원을 벌어들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반도체 임직원들의 말을 빌면, '돈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1993~1995년 돈을 쓸어담던 추억은 2년 후인 1997년 삼성전자가 자본잠식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막을 내린다.
당시 삼성전자 CFO였던 최도석 전 삼성카드 부회장은 한 강연에서 "지난 97년 삼성전자의 자기자본은 5조8000억원이었고 환율 급등에 따른 환율 조정 3조2000억원과 투자자산중 부실 부문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자기자본은 제로였다"며 "삼성전자는 97년 결산 당시 망한 회사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삼성전자의 차입금이 20조원에 달했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1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신청했었다"면서 "이에 대해 정부의 모씨로부터 '벌레 한 마리가 우물 물을 흐린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은행 문을 나서면서 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매출 18조 4653억원에 영업이익이 2조 8562억원 정도였지만, 환율급등으로 외환차손이 2조원을 넘었다. 이로 인해 영업외 비용이 5조원을 넘었고 자본잠식에 빠진 것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전 직원의 30% 가량인 2만 8000명을 구조조정하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겪기도 했다.
하이닉스 노조는 후배인 삼성전자 노조가 경험하지 못한 우여곡절 속에서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오늘의 SK하이닉스 성장의 중추역할을 해왔다. '노사불이((勞使不二: 노조와 회사가 둘이 아니라 하나다)'의 정신으로 위기에 빠진 하이닉스를 살리는데 노조가 앞장 서 온 것은 한국 노동사에서도 높이 평가받을만한 일이다.
1999년 합병 이후부터 어려움에 빠진 하이닉스는 반도체 외에 휴대폰과 가전, 디스플레이 등을 아우르는 삼성전자와는 다른 구조였다. 반도체가 어렵다고 기댈 언덕이 없었던 하이닉스는 채권단과 싸워가며 스스로 살아남지 않으면 안됐다. 이런 상황이 하이닉스 노조와 사측간 결속을 이끌어냈고 지난해까지 33년간 무분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하이닉스 노조는 회사가 어려울 때는 임금동결과 단체협약 무교섭 타결로 위기극복에 동참했고, 회사는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직원과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문화를 만들었다. 회사가 이익을 낼 인상된 조합원의 임금 일부를 협력사 지원에 사용하는 '임금공유 모델'을 국내 기업 처음으로 실천한 것도 SK하이닉스 노조다.
반도체 공장의 경우 자동차 라인 등과 달리 가동이 멈출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파업은 '최후의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 출범 5년만에 파업을 선언한 노조가 선명성 투쟁이나 강경투쟁으로 정치적 입지 강화에만 몰두한다면 삼성전자 성장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 AI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 나가는 시대에 투쟁일변도의 전근대적 노동운동은 사회적 공감을 받기 힘들다.
재계 관계자는 "'투쟁' 구호를 외치는 이들의 모습은 시민들에게는 배부른 '투정'으로 보일 수 있다"며 "지금은 내부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싸울 때가 아니라 힘을 모아 외부 경쟁자와 맞서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노키아나 인피니언, 엘피다처럼 삼성전자의 이름이 글로벌 경제전쟁터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5~10년 후 삼성전자의 핵심사업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한 선대 이건희 삼성회장의 말처럼….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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