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전공의 속마음 쏟아냈다…92.3%는 "병원 안 돌아가"

정심교 기자 2024. 6. 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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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과 중의 기피과'로 불리는 흉부외과. 이곳에 몸 담았던 전공의들이 소속 대학 교수들에게 바라는 점과 아쉬운 점이 뭔지 엿볼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학술단체인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가 최근 흉부외과 전공의 5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다.

3일 학회에 따르면 이번 설문조사에서 주관적 의견을 적는 기입란에 사직 전공의 A씨는 "흉부외과는 교수들 돈도 많이 벌면서 전공의 지원은 한 푼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또 다른 사직 전공의 B씨는 "흉부외과 문제의 시작은 정부의 지원 부재, 저수가에서 기인했는데도 학회가 그런 정부에 맞서 싸우지 않고 PA로 작은 구멍만 막기에 급급했던 게 실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흉부외과계가 지난 수십년간 'PA'라는 불법 간호사와의 업무 협력을 암암리에 당연시해온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정부와의 협상과 별개로, 학회 차원의 반성과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PA보다 Hospitalist(입원전담전문의)를 고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직 전공의 C씨는 '흉부외과는 항상 저점이었기에 오를 일만 남았다'고 종종 말했다는 한 교수의 말을 언급하면서 "지금의 의료정책을 강행하고, 의사를 모조리 악마화한 사회에서는 흉부외과가 반등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수들을 향해 "전공의들을 지지해주고, (교수들의) 힘을 모으는 결단을 내려주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흉부외과 환경을 개선하고, 소속 전공의를 돕기 위해 교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임원진이 1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전문의들이 예상하는 전공의 복귀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석(강북삼성병원) 기획홍보위원장, 정재승(고려대 안암병원) 보험위원장, 임청(분당서울대병원) 이사장, 김형렬(서울아산병원) 총무이사./사진=정심교 기자

이처럼 일부 흉부외과 전공의가 교수들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데 대해 이 학회 임청(분당서울대병원) 이사장은 "일단 그런 이야기가 전공의 사이에서 나왔으니, 기성세대로서 반성해야겠다"면서도 "소수 의견이라 믿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공의를 소속 병원, 대한의사협회나 지역 의사회 등에서 지원해주고는 있는데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그들에게 단기적으로 지원할 수는 있어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 사태가 장기화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라고 언급했다.

학회에 따르면 흉부외과 사직 전공의 일부는 병원에서 사직 처리가 되지 않자 의사면허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현재 단기 아르바이트나 배달 일을 전전긍긍하고 있다. 3개월 넘게 월급이 끊기면서 대출받은 전공의들도 더러 있다는 것. 김형렬(서울아산병원) 총무이사는 "전공의들에게 교수들이 연락하면 회유하려는 것처럼 여겨, 우리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전공의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전공의 대표를 통해 소식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동창들에게 돈을 걷어서 일부 어려운 친구들에게 나눠 주라고 전공의 대표에게 건네준 적도 있다"며 "일시적으론 그나마 가능하겠지만 이 사태가 더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학회가 4일간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의 일부. 흉부외과 전공의의 77%는 복귀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63.5%) 전공의 복귀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13.5%)이라고 답했다. 또 이들이 예상한 흉부외과 전공의 복귀율은 '50% 미만일 것'이란 응답자가 36.5%으로 가장 많았다. /자료=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는 107명. 그중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한 전공의는 52명으로 전체의 48.6%다. 응답자의 86.5%가 상급종합병원에, 11.5%가 종합병원에 소속돼 있으며, 응답자 전체의 92.3%는 '병원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들은 흉부외과의 위기 원인으로 '낮은 수가'(50%), '의료 집중 현상'(15.4%), '정부의 지원 부재'(15.4%) 순으로 꼽았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69.2%)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부의 정책 지원'(23.1%)과 '전공의 교육 시스템 확보'(7.7%)도 그 뒤를 이었지만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0%)는 응답은 아무도 없었다.

의대 증원책과 관련해서는 교수들의 입장 역시 '매우 부정적'이었다. 김형렬 총무이사는 "지금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전체 의대 정원 3058명 중 30명도 채 되지 않아, 정원의 50%를 못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매년 졸업하는 의대생 약 3000명 가운데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1%도 안 되는 셈이다. 그는 "이런 판국에 의대 정원을 2000명 더 늘린다고 20명이 흉부외과에 더 올까? 절대 안 온다. 2000명 더 늘린다고 증원분이 흉부외과 같은 필수의료에 더 올 것이란 가정 자체가 잘못됐다"며 "흉부외과 진료 환경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정원을 늘리는 건 의미 없다"고 주장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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