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클루지’와 금투세

여론독자부 2024. 6. 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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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섭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금투세 논의 후 개인투자자 2배↑
절세·대체소득 위해 단타 치중 우려
과세형평성에만 매몰땐 '전체' 놓쳐
전반적 세제개편 큰 틀도 고려해야
[서울경제]

게리 마커스는 저서 ‘클루지(Kluge)’에서 진화는 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채택한 최선의 본능이자 전략이지만 ‘최적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진화는 계획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이뤄진다는 이유에서다.

진화는 나중에 뒤돌아보면 변화가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이뤄지는 탓에 때로는 예상치 못한 문제도 일으킨다. 인류가 음식을 섭취할 때 이를 즐거운 대상으로 인식하게 해 에너지 확보를 장려하는 도파민이 그 예다. 도파민은 좋은 음식뿐만 아니라 약물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작용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경영학적으로는 이를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의 최적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자본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여부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클루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주지하다시피 금투세는 금융소득 과세 형평성 제고를 통한 자본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지난해부터 시행하기 위해 2020년 도입됐다. 이후 뜨거운 논쟁 끝에 2022년 말 시행 시점을 2년 유예했다. 이제 또다시 시행을 6개월가량 앞두고 2년 전과 같은 사회적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야의 정치적 합의 사항이고 한 번 유예가 됐던 제도이므로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금투세는 평범한 대다수 개인투자자와는 관련이 없으므로 이를 폐지하자는 것은 소수의 부자만을 위한 감세 정책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 시점에서 근로소득세·종합소득세 등 전체 소득세제 내에서 금투세는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까. 증권거래세와 같은 세금은 금투세 부담으로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금투세를 통해 확보된 세수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필자는 금투세와 관련해 이러한 큰 틀의 논의를 잘 보지 못했다.

금투세 도입 당시와 지금의 자본시장을 비교하면 그 사이 여러 변화가 있었다. 특히 자본시장 참여자 수의 급격한 증가가 눈에 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금투세 도입 직전인 2019년 말 국내 증시의 개인투자자 수는 612만 명이었으나 지난해 말 1403만 명으로 증가했다. 올 4월 기준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가 약 2958만 명임을 감안하면 2명 중 1명이 증권에 투자하는 셈이다.

20~30대 청년층의 자본시장 참여 증가도 주목할 만하다. 개인투자자 중 20~30대는 2019년 말 145만 명에서 지난해 말 426만 명으로 약 3배가 됐다. 20세 미만을 제외하고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높아진 부동산 가격과 물가 상승이 이 같은 변화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주거비·교육비·식대 등 생활을 위한 비용은 상승하는데 월급은 뻔하다. 생존을 위한 대안적인 소득원을 찾는 것은 필수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투세를 시행하면 당초 제도의 목표였던 자본시장 활성화에 오히려 역행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내 시장에 새로운 세금 부담을 도입하면 투자자들은 대안적인 투자 수단이나 해외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을 늘릴 것이다. 또 절세를 이유로 특정 이익이 달성되면 투자를 중단하는 단기 수익 중심 투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안정적 장기 자본 공급을 통한 시장 활성화라는 금투세의 목표와는 차이가 있는 결과다.

이왕에 제도를 시행한다면 금투세 이외의 전반적인 세제 개편 방안까지 큰 틀에서 함께 논의했으면 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부분 최적화에 매몰된 나머지 전체 최적화를 보지 못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제도를 우선 적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고쳐도 금투세는 진화하겠지만 민생들은 그 과정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고생해야 된다. 이미 충분히 고생하고 있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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