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아이콘’ 된 푸바오… 팬들 “학대 말라” 뉴욕에 광고

구아모 기자 2024. 6. 3.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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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 요구 시위 잇따라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항의 광고 - 푸바오 팬클럽이 제작한 ‘푸바오 학대 항의 광고’가 지난달 31일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송출되고 있다. /바오패밀리 갤러리

“나는 푸바오야. 한국에서 태어난 첫 판다야. 중국으로 이사했어. 가끔 사육사가 아닌 사람이 날 만져. 내 이름을 기억해줄래?”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최대 번화가인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푸바오(4·암컷) 사진이 등장했다. 푸바오 한국 팬들이 최근 중국 당국의 ‘푸바오 학대 논란’에 항의하기 위해 돈을 모아 상영한 ‘내 이름은 푸바오’란 제목의 15초 분량 영상 광고였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트럭 시위를 또 할 수 있다”는 영상도 송출됐다. 이들은 리창(李強) 중국 총리가 방한한 지난달 27일부터 나흘 동안 서울 명동 중국 대사관 앞에서 ‘공주 대접 믿었더니 접객 행위 사실이냐’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기도 했다.

2020년 삼성 에버랜드에서 태어나 지난 4월 중국에 반환된 푸바오가 중국의 ‘판다 외교’ 기조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 쓰촨성 판다 기지에 수용된 푸바오가 시멘트 바닥에 방치되거나 목줄에 묶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한국 팬뿐 아니라 중국 팬들까지 당국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합했다. 당황한 중국 당국은 이례적으로 즉각 푸바오 영상을 공개하며 해명에 나섰지만 한국 팬들은 “우리 푸바오를 괴롭히는 중국을 결코 믿을 수 없다”며 뉴욕에서까지 항의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대사관 앞에선 트럭 시위 - 리창 중국 총리가 방한한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중국 대사관 앞에서 푸바오 학대 의혹에 대한 해명을 촉구하는 한국 팬들의 트럭 시위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 “푸바오를 둘러싼 싸움으로 판다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며 “전례 없는 반발은 중국의 몇 안 되는 난공불락의 소프트 파워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판다 외교’는 뿌리가 깊다. 당나라 때 일본에 판다를 보냈다는 설도 있다. 1990년대 판다 외교를 본격화한 이후 전 세계 20국 26기관에 판다를 보냈다. 한 외교학자는 “동물 중 ‘귀여움의 지존’으로 불리는 판다를 각국에 보냄으로써 세계에 친중(親中) 정서가 형성됐다”고 했다.

중국이 판다를 통해 휘두르는 소프트 파워는 미국·일본마저 쥐락펴락한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방중을 계기로 중국이 암수 판다 한 쌍을 선물하면서 판다는 ‘미·중 우호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양국 갈등이 심화하며 중국은 임대차 계약을 종료하는 방식으로 미국 내 판다를 회수했다. “중국의 징벌적 외교”란 지적이 나왔다. 일본도 2008년 판다 임대가 종료되자 도쿄 우에노 동물원 상권이 죽어갔다. 팬들도 판다 재도입을 외쳤고, 결국 2011년 중국과 협상해 판다를 재임차했다. 최근엔 중국이 미국 워싱턴 국립 동물원에 판다 한 쌍을 보내기로 하자 미국의 판다 팬들이 열광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돌아간 푸바오가 중국 내 열악한 실태를 폭로하는 ‘반중 아이콘’이 돼버리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한·중 판다 팬들은 푸바오가 사육사 등 전문 인력이 아닌 고위층 민간인 ‘접대’에 동원, 사람의 맨손에 닿았다고 주장했다. 판다는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삼성 에버랜드 사육사들은 푸바오를 만질 때 언제나 장갑을 착용했다. 한 전직 외교관은 “한국 팬들은 ‘세계 최고 기업 삼성이 낳아 키운 우리 푸바오를 어떻게 저렇게 대하느냐’고, 중국 팬들은 ‘우리가 판다 종주국이라더니 왜 한국보다 못하느냐’는 마음으로 단결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국제 사회에선 이번 푸바오 논란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과거 미국·일본·프랑스에서도 중국에서 빌려준 판다 사이에서 2세가 태어나 반환된 사례가 있다. 일본의 샹샹(7·암컷)은 ‘국민 판다’ , 프랑스의 위안멍(4·수컷)은 ‘어린 왕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뉴욕에서 항의 광고를 할 만큼 논란이 뜨거웠던 적은 없었다. 한·중 판다 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중국 당국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배경에 대해 용인대 박승찬 교수는 “시진핑이 펴왔던 ‘만리 방화벽’ 등 정보 통제 정책에 대한 불만이 푸바오 사태를 계기로 중국 체제 자체에 대한 균열을 일으키는 양상”이라고 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중국이 자국의 소프트 파워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졌던 판다 외교가 이번 ‘푸바오 푸대접’으로 흠집이 났다”며 “에버랜드에서 금지옥엽으로 키워진 푸바오가 그간 다른 나라에 임대됐던 판다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중국 일각에서도 동물권 증진 논의와 맞물려 그간 중국 당국이 행사하던 판다 ‘영구 소유권’ 방침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한국 태생 푸바오는 소유권을 중국이 가지더라도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 살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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