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재팬’ 요시키 “지드래곤·BTS·뉴진스 좋아해…난 옛날부터 親韓 아티스트”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6.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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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록밴드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가 지난달 17일 도쿄 롯폰기힐스에서 열린 ‘디너 앤 브렉퍼스트 쇼 2024′ 공연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일본 대중음악이 금지됐던 시절 한국에서 얻은 인기에 대해 “나의 음악 세계를 향해 가는 계기가 됐다”며 한국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니셔블

“2019년은 정치적인 문제를 의식할 수도 있는 때였습니다. 그래도 (한국 국민에게) 우정과 고마움을 전하는 게 예술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7일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에서 만난 일본 록밴드 엑스재팬(X JAPAN)의 리더 요시키(본명 하야시 요시키)는 “5년 전 친한 친구인 배우 이병헌으로부터 강원도 산불 소식을 듣고 기부에 동참했다. 나는 아주 예전부터 친한(親韓) 아티스트”라며 이렇게 말했다. 요시키는 2019년 강원도가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피해 지역 어린이들를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문재인 정권 때의 일로, 한일 관계가 최악이었고 일본에서도 혐한(嫌韓)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다. 요시키는 “2022년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파, 트위터(현 X)에 애도의 글을 올렸다”고 했다. 59세인 요시키는 “음악 창작은 인생과 마주하는 일”이라며 “노래 ‘엔드리스 레인(Endless Rain, 1989년 발표)’은 아버지를 잃었던 경험에서 ‘왜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에 만들었다”고 했다.

-나온 지 35년이 된 노래 ‘엔드리스 레인’이 여전히 특별한가.

“피아노는 네 살 때부터 쳤다(그는 어린 시절 독일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아버지가 클래식 음반을 자주 사다 줬고 어릴 땐 클래식만 들었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때 록에 눈을 떠, 그때의 경험으로 (’엔드리스 레인’) 곡을 썼다. 아버지를 잃어버린 경험을 하며 삶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 슬픔을 씻어내는 비(雨)를 엔드리스 레인(그치지 않는 비)이라고 썼다. 어둠 가운데서도 빛을 향해 가는 노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가 지난달 17일 도쿄 롯폰기힐스에서 열린 ‘디너·브렉퍼스트 쇼 2024’ 공연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니셔블

-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인생을 마주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인공지능(AI)에다 몇 마디 입력만 하면 몇 초 만에 음악이 툭 만들어진다. 그걸 결코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창작은 만드는 과정과 시간이 소중하다. 예컨대 미술 작품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시간과 스토리가 더해져서 예술인 것이다. 음악 역시 (정체성에) ‘창작의 시간’까지 포함된다. AI가 한순간에 하는 일과는 다르다.”

-AI와 음악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AI는 생활의 모든 국면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AI 서비스인) 챗GPT는 GPT4o로 최근 진화했다. ‘예술가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추궁당하는 상황까지 왔다. 싱귤래리티(singularity·AI가 인간 지능을 넘는 기점)도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음악업계는 어떻게 변할까. 나는 AI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엑스재팬은 한국 대중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친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평가, 한마디로 영광이다. 난 K팝(한국 대중음악) 너무 좋아한다. 내 음악 인생은 생사(生死)를 헤매며 무턱대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데뷔 당시 일본에서도 록이란 장르를 좀처럼 받아주지 않았던 시기여서 반항적으로 노력했다. 일본에서 결국 엑스재팬의 음악을 받아들였는데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도 받아줬다는 것이 굉장히 영광스럽다.”

-1990년대까지 일본 대중음악이 금지됐었다. 한국 젊은이들이 몰래 들었다는 것을 아나.

“우리 (엑스재팬의) 음악에 그런 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게 한국 팬들이었다. (한국에서의 인기는) 나의 음악 세계를 향해 갈 수 있는 계기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음악의 힘이랄까. 당시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 음악을 들어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이 있나.

“지드래곤과 친하다. 요즘도 그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BTS는 당연히 좋다. 요즘 화제인 뉴진스도 듣는다. 뉴진스는 지난해 연말 일본 NHK의 ‘홍백가합전’이란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했다. 남성 그룹은 스트레이 키즈가 멋있고 세븐틴도 좋다. 최근에 베이비몬스터도 듣는다.”

-2019년 한국 강원도에 산불 때 기부한 이유는.

“나는 미국에 살면서 패션 작업은 프랑스 등 유럽에서 주로 한다. 예술에 국경은 없다고 실감한다. 일본과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나를) 굉장히 따뜻하게 맞아준 한국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나라다. 할리우드에서 만난 친구 이병헌에게서 ‘큰 산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기부를 결정했다. 당시 (한일 간) 정치적인 일을 의식할 수도 있었지만 평소의 고마움과 우정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 게 예술가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엑스재팬은 화려한 영광만큼 비극도 많이 겪은 그룹이다. 1998년 멤버 중 한 명인 히데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 사인(死因)에 대해선 자살인지 사고사인지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있다. 2011년엔 베이시스트로 불화 끝에 1992년 엑스재팬에서 탈퇴한 타이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엑스재팬 멤버는 조금씩 변해 왔지만, 리더 요시키는 자리를 지켰다.

-예전에 한 공연에서 히데를 홀로그램으로 세운 적이 있는데.

“2018년 미국 음악 페스티벌에서였다. 히데뿐 아니라 타이지도 홀로그램으로 만들었다. 홀로그램 멤버와 같이 무대에 섰을 때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디지털 세계인지 선 긋기가 어려웠을 정도다. 퀄리티(품질)가 너무 높았다. 무대에서 나도 깜짝 놀랐다.”

-스스로 꼽는 엑스재팬 최고 명곡은.

“‘엔드리스 레인’은 최고 명곡 후보 중 하나다. 당시에 격렬한 곡만 쓰다가 첫 발라드로 ‘엔드리스 레인’을 만들었다. 이후에 ‘티어스’나 ‘포에버 러브’와 같은 발라드 곡을 더 썼다. 빠른 곡인 ‘사일런트 젤러시’도 좋다. ‘아트 오브 라이프’라는 30분짜리 곡도 있다. 한번 들어봐도 좋을 곡이다.”

-내년 월드투어하는데 한국 공연 계획도 있나.

“오는 8월 도쿄에서 ‘디너·브렉퍼스트 쇼 2024′를 연다(저녁 공연은 디너쇼, 오전에 시작하는 공연은 브렉퍼스트쇼라고 한다. 도쿄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8월 2~31일 번갈아가며 공연 예정이다). 올해는 이때가 마지막 단독 공연이 될지 모르겠다. 내년 투어는 아시아를 돌 예정이다. 한국은 꼭 가고 싶은 위시리스트(희망 목록)에 있다.”

☞엑스재팬(X JAPAN)

엑스재팬(X JAPAN)은 1982년에 당시 지바현 다테야마시의 고등학생이던 요시키가 결성한 밴드다. 본래 ‘X’였다가 해외에 같은 이름의 밴드가 있어, 1992년에 이름을 바꿨다. 1989년 도쿄로 상경해 본격 데뷔한 뒤 진한 화장과 금발 등 화려한 외모를 내세운 ‘비주얼 록’으로 일본 및 미국·아시아 등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한국에선 일본 대중음악이 금지됐음에도 불법적으로 팔린 앨범이 100만 장이 넘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멤버는 리더(피아노 등) 요시키, 보컬 토시, 기타 히데, 기타 파타, 베이스 타이지였다. 1997년 해산했다가 2007년 재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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