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왜 '해병대 수사단 조사결과'를 전력 회수했나

최기철 2024. 6.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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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첩 후 '대통령-국방장관 통화' 집중
국방부 관리관·검찰단 나서 경찰서 회수
법조계 "군 조사결과, 경찰 수사 가이드라인"
"'검찰 기소·재판 단계'에도 영향 적지 않아"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일 개인 휴대전화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과 세차례에 걸쳐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법조계는 당일 국방부가 경찰로 이첩됐던 '채상병 사망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를 회수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9월 2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두 사람의 전화통화는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을 맡았던 박정훈 대령이 8월 2일 오전 10시30분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결과와 자료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뒤 집중됐다. 지난달 28일 박 대령의 항명죄 재판과 관련해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된 통신사실조회회신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2시 7분, 12시 43분, 12시 57분 등 세차례에 걸쳐 이 전 장관에게 전화했다. 당일 이 전 장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었고 윤 대통령은 그날부터 8일까지 휴가였다.

경찰 이첩은 당초 국방부와 해병대 계획대로였다. 숨진 채 모 상병 직속상관인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수해 지역 수색 작업을 지휘한 초급간부 등 총 8명의 업무상과실치사혐의가 의심된다는 게 내용이었다. 해병 1사단 군검찰단도 사전 검토를 마친 결과다. 이 전 장관 역시 나흘 전인 7월 30일 오후 박 대령으로부터 대면보고를 받고 직접 서명했다. 여기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 국방부와 해병대 지휘부 인사들이 여럿 동석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김 사령관 간 통화를 시작으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박 대령의 언론 인터뷰와 군검찰 등 수사당국 조사 상황을 종합하면, 임 비서관은 김 사령관과 당일 오후 6시와 6시 15분 두차례 걸쳐 통화했다. 국가안보실은 박 대령에게 수사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박 대령은 이를 거부하고 다음 날 언론브리핑 자료를 대신 제출했다.

이튿날인 31일 아침 윤 대통령이 주재한 외교안보분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이 사안이 논의됐다. 박 대령이 이후 김 사령관으로부터 들었다는 'VIP 격노설'이 불거진 회의다. 이날 오전 9시53분 임 비서관과 김 사령관이 다시 통화하고, 11시 54분에는 대통령실 누군가가 일반전화(02-80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했다. 3분 뒤 이 전 장관은 예정됐던 '채상병 사망사고' 언론브리핑을 취소시켰다. 국회브리핑 역시 취소됐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 원인 수사 외압' 의혹 관련 2차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2023년 9월 14일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후 3시 18분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 대령에게 직접 전화로 "수사 대상을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야 한다…사건 인계서 요약 총론본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 전 장관은 오후 4시 김 사령관과 박 대령에게 조사결과 이첩 보류를 지시한 뒤 출장차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했다. 이 전 장관은 다음 날에도 군사보좌관을 통해 문자메시지로 김 사령관에게 조사결과 이첩 보류를 재차 지시했다.

같은 날인 8월 1일, 유 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전화로 '혐의자, 혐의내용, 죄명 등을 다 빼야 한다'며 조사결과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박 대령은 "외압으로 느껴진다"면서 "장관님 결재본이 있다. 장관님한테 내가 직접 보고했다. 장관 지시로 나한테 지시하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박 대령은 이 통화 직후 김 사령관이 자신을 불러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문자를 보내 이 전 장관이 귀국하면 보고서를 수정해 다시 보고할 것과 '혐의자, 혐의내용, 죄명 등을 다 빼라'고 했다고 한다. 박 대령은 이튿날인 8월 2일 원안 그대로 조사결과와 자료를 계획된 일정에 맞춰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조사결과와 자료가 이첩되자 이를 회수하기 위해 국방부와 경찰이 동시에 움직였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 첫 통화 전 유 관리관이 김 사령관에게 전화한 데 이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대통령실 공직기강 비서관실 파견 행정관으로부터 연락을 접수받았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과의 당일 첫 통화(3분)가 끝난 뒤인 오후 12시 40분 쯤에는 국수본 관계자가 경북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군이 이첩한 기록을 회수하고 싶어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두번째 통화(14분 정도)가 끝난 뒤에는 '국가안보실-김 사령관-유 관리관' 순으로 전화가 이어졌다. 휴가 중이던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이 김 사령관에게, 김 사령관이 유 관리관에게 그리고 유 관리관이 경북경찰청에 전화로 사건기록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유 관리관의 '회수 통보'는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당일 마지막 통화(오후 12시 57분) 뒤인 1시 50분이다. 그 후 국방부 검찰단장 주재로 사건기록 회수를 위한 대책회의를 거쳐 일과시간 이후인 오후 7시 20분 국방부 검찰단이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사건기록을 회수했다. 결국 '조사 결과 보고서 회수'가 이번 사태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앞 태극기와 국방부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사 결과 보고서 회수'가 이번 사태의 핵심인 이유는 그 보고서 자체가 향후 경찰수사와 검찰 기소, 재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식문건이기 때문이다.

군 사건 수사 경험이 있는 복수의 경찰간부 출신 법조인들과 현직 경찰들은 "군에서 경찰로 이첩되는 조사결과 보고서와 사건 기록 등은 경찰 수사의 기초이자 방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사라고는 하지만 군사경찰 수사관들이 사건 관계자들과 현장, 지휘 문건 등을 치밀하게 조사하기 때문에 사실상 초동수사, 초벌수사라는 것이다.

이들 중 한 법조인은 "군사경찰직무법상 군사경찰은 의견제시를 위한 기초조사를 한다는 취지로 규정돼 있지만 폐쇄적 조직인 군 사건을 가장 먼저 군 수사 전문가들이 조사한 사항이기 때문에 경찰로서는 이와 다른 결론을 내는 것은 부담스럽다. 수사기관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 다른 결론을 낸다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했다. 이어 "조사결과나 사건 기록, 즉 공식 문건이 경찰로 넘어오게 되면 사건은 군을 떠나게 된다"면서 "조사결과를 수정해야 할 경우 당시 국방부로서는 박 대령의 조사결과 등 공식 문건 이첩을 막는 것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라고 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 5월 14일 오전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22시간 동안의 밤샘 조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사결과 수정'과 관련해서는 임성근 해병1사단장을 혐의 대상자에서 제외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사태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 전 장관의 명을 받아 재조사에 나선 국방부조사본부는 같은 달 24일 임 사단장을 빼고 현장지휘에 나섰던 해병대 1사단 포병 11대대장과 포병 7대대장 등 2명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넘겼다. 다만,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함께 이첩됐다. 박 대령이 유 관리관 등 국방부 관계자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 뒤였다.

경찰간부 출신의 다른 법조인은 "해병대 수사단 원안과 국방부조사본부 재조사 결과를 비교해 봐야 한다. 원안만 경찰로 이첩된 경우 임 사단장도 혐의자이기 때문에 경찰로서도 최종 수사결과에서 그를 빼기 어렵지만. 조사본부 재조사 결과에서는 빠져 있기 때문에 경찰 역시 부담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찰 출신 법조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국방부가 혐의자를 8명에서 2명으로 공개적으로 줄였다. 결과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줘 경찰 수사폭을 제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번 사태를 본 형사법관 출신 변호사는 "기소 후 법원까지 제출될 문건이다. 군 수사관들이 조사한 뒤 국방부 검찰단이 검토를 끝냈고, 국방부와 해병대 수뇌부가 있는 자리에서 장관이 직접 결재까지 하지 않았느냐"며 "국방부로서는 잘못된 수사와 법리적용을 바로잡은 것이라는 논리를 펼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궁색해 보인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 6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지휘관들에게 거수경례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때문에 8월 2일 세차례 통화에서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내용에 '채상병 사건'과 관련한 언급이 있었다면 당면 현안인 '조사결과 보고서 등 이첩' 문제가 거론됐을 거라고 보는 법조인들이 많다. 박 대령 항명죄 입건과 보직해임의 원인행위도 바로 박 대령의 조사결과 보고서 경찰 이첩이었기 때문이다. 한 군법무관 출신 법조인은 "항명죄 입건이나 보직해임은 군 인사권 영역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박 대령은 지난해 8월 9일 낸 입장문에서 "국방부 장관 보고 이후 경찰에 사건이첩 시 까지 저는 그 누구로부터 장관의 이첩 대기명령을 직접/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 다만 법무관리관의 개인의견과 차관의 문자내용만 전달 받았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31일 "해병대원 사건 언급은 있지도 않았다"며 "당시 이 전 장관은 방산 관련 업무로 우즈베키스탄을 방문 중이었고 방산과 국방 관련한 대화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이 전 장관 역시 변호인을 통해 지난 29일 "국방부장관의 대통령, 대통령실 관계자,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과의 통화를 이상한 시각으로 보면 곤란하다. 이 전 장관의 통화 기록 중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부분은 결단코 없다"고 강조했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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