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는 아내, 반항하는 딸… 사랑의 질서 허무는 '불행의 악순환'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부모에게 배운 ‘불행한 습관’
'반사회' 혹은 '외톨이'로 전락
'미·사·고'로 과거에서 탈피해야
Q: 50대 가장입니다. 아내와 중학생 딸 사이의 팽팽한 감정 다툼에 집안 분위기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합니다. 아내는 다소 ‘높고 엄격한 기준’으로 딸을 가르치려 하고, 딸은 이런 엄마에게 반항하는 형태죠.
그런데 딸이 언제부턴가 공부에 완전히 손을 놓은 양 학원도 안 가고 집에서 TV와 휴대폰만 들여다봅니다. “당장 휴대폰 내려놔”라고 소리치는 아내, 이를 무시하는 딸의 실랑이가 이어지더니 아내는 의자를 집어던지며 감정을 터뜨렸고, 딸도 지지 않고 욕설과 함께 리모컨을 던져 부수더군요. 분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내와 반항하는 딸. 저는 중간에서 어찌해야 하나요?
A: 의뢰인인 남편은 아내와 딸 사이에서 한동안 방황하다 결국 필자에게 가족 상담을 제안했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아내의 화를 감당할 수 없어 눈치 보기 급급했고, 딸은 엄마의 분노에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는 것 같다고 하였다.
필자는 가족 상담을 통해 갈등의 원인을 ‘분노와 회피의 대물림’이라고 파악했다. 의뢰인의 아내는 성장기 완고하고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분노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배우며 자랐다. 할아버지의 분노가 아내(엄마)의 분노로, 그리고 딸(손녀)의 분노로 대물림되고 있었다. 남편 역시 모계 가정에서 자라 아버지로부터 가장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배우지 못해 아내에게 맞추거나 회피한 것이 한몫했다. 할아버지의 회피와 무책임이 남편(아빠)에게 대물림된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불행한 가족은 불행의 원인을 모른 채 상처만 주고받으며 ‘사랑의 질서’를 허문다. 가족 간의 이해와 존중, 유대와 사랑이 부족하면 강요와 억압, 비난과 회피가 이어지고 결국 가족의 마음속에는 불만과 갈등이 쌓인다.
더 큰 문제는 자녀들에게서 나타난다. 가정에서 자기 존재감을 찾기 힘든 자녀들은 두 가지 형태의 부적응을 보이는데 △집 밖에서 자기 존재를 찾거나 △자기 안으로 숨는 극단적인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전자는 각종 사고를 일으키며 반사회적인 행태를 보이고, 후자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비사회적인 모습으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왜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어린 시절 너무 싫어했던 부모의 악습관에 시간이 갈수록 둔감해져 오히려 그것을 모델링(modeling)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관계를 반복함으로써 그 시절 풀지 못했던 갈등을 다시 한번 풀려는 ‘귀향 증후군’(The going home syndrome)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뇌과학자들은 뇌파검사, 자기공명 영상 등을 통해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은 이성의 뇌를 약화시키고, 감정, 충동의 뇌를 강화시킨다’(신경과학자 마이클 메르체니치 박사)는 사실을 밝혀왔다. 즉 어린 시절 학대 등 깊은 상처는 이성의 뇌를 약화시키고 감정과 충동의 뇌를 강화시켜, 부모로부터 배운 ‘불행한 습관’을 조절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모에게 배운 불행의 패턴은 배우자는 물론, 자녀에게도 쉽게 전해져 가족 간 사랑의 질서가 무너져 버린다. ‘불행의 악순환’인 것이다.
사랑의 질서를 회복하려면
불화의 원인을 빨리 알아차리거나 자기성찰이 뛰어난 가족은 불행의 대물림을 중단시키려 노력하고 실제로 불행을 절감시킨다. 뱀은 1년에 한 번 탈피하지 못하면 죽는다. 가족 역시 아픈 과거에서 탈피해 새로운 미래를 써나가야 한다.
먼저, 지난날 가족에게 준 상처에 대해 사과한다. 사과는 말로 행해져야 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잘못에 대한 변명이나 합리화는 금물이다.
둘째,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정중히 부탁하자. 감정이 앞선 대화가 아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말하는 ‘욕구 중심의 대화’를 한다. ‘당신은 참 이기적이야’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주면 정말 좋겠어’라고 말하면 상대도 귀를 열기 때문이다.
셋째, 세대, 남녀, 가치관, 성격 등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려 노력하자. 생김새가 다르듯 마음 꼴도 다르다. 가족 개개인의 고유함, 가치, 능력, 가치관, 성격 등의 다름을 이해해야 좋은 마음이 연결될 수 있다.
넷째, 문제의 원인에 대해 구성원 모두 고민하고 소통하면서 풀어나가자. 질문-경청-공감-반응의 순서로 문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어떤지, 질문하고 경청하고 각자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 순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다섯째, 문제가 생기면 숨지 말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도움을 구하자. 폭력이나 범죄, 자해, 가출, 중독과 같은 심각한 상황은 더 늦기 전에 전문가를 만나 ‘냉정한 가족 사랑’ 방법을 배워야 한다.
여섯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 ‘밀어내는 대화’보다는 ‘다가가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당신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정말 힘들었겠다“ ”와 멋지다“ ”네가 진짜 원하는 건 어떤거야?“ 등이 있다.
일곱째, 행복한 가정은 가족의 수고에 감사를 표현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가족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세 글자는 큰 노력 없이도 가족의 유대를 강화시킨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이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가족에게 무단 투기할 것이 아니다. 화, 짜증, 불만, 의심, 미움 등 감정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감정의 여과장치를 가동한 뒤 소통하자. 통(通)하지 않으면 결국 통(痛)한다.
나현정 굿상담클리닉 원장·전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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