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잘나가는 미국증시, 못나가는 미국대통령
미국에선 뉴욕증시 최고치 소식이 계속 들린다. 증시가 좋으니 투자자들은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가 기뻐하는 건 아니다. 진작 엔비디아 주식을 산 사람이 있지만 AI(인공지능) 테마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증시가 잘나가고 실업률도 4% 아래에서 유지되는 등 경제가 좋은 미국이지만,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1일 공개된 로이터와 입소스의 여론조사 결과(5월30~31일 조사)를 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36%로 바닥 수준에 머무른다. 대선(11월5일)을 눈앞에 둔 입장에서 나쁜 결과다.
낮은 지지율의 큰 이유는 경제에 있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물가가 높아진 상태에서 자리를 잡아간다는 뜻이지 물가 자체가 되돌아간다는 게 아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의 계란값은 바이든 임기 초에 비해 44% 높다. 바이든 집권 이후 식료품 가격은 20% 넘게 올랐다고 한다(노동부 추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높여놓았기 때문에 자동차·주택 거래를 할 때 대출 부담도 크다.
위 여론조사를 진행한 로이터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마음이 돌아섰다는 오랜 민주당 지지자는 "그는 불량배 같지만, 일을 해낸다"고 말했다. 트럼프에 대해 유죄가 나오면 찍지 않겠다던 공화당 지지자는 4월에 24%였지만, 정작 배심원의 유죄 평결 이후 이번 조사에선 14%로 줄어 '결집 효과'까지 보였다.
바이든은 특히 4년 전 그를 지지해준 쪽에서 균열이 감지된다. 연소득 5만달러(7000만원) 가구에서 그의 지지율은 14%포인트 감소했다.(33%) 18~29세 사이에서는 11%포인트 줄었다.(37%) 분수효과(저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경기를 살린다는 개념. 낙수효과의 반대)를 주장한 그이지만 지금 현상은 다르다.
지난달 21~23일 NPR, PBS 방송과 여론조사를 진행한 마리스트폴의 담당자는 젊은 층의 바이든 지지도 축소에 대해 "그들은 성인기를 앞두고 그 단계로 어떻게 들어갈지를, 생활비와 주거비를 부담으로 느낀다"고 지적했다. 세대별로 보면 이들의 투표 의지는 가장 낮았고, 제3 후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
코로나19, 두 개의 전쟁 등 외부의 문제들이 영향을 줬지만 대중은 바이든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4월 말 ABC방송과 입소스 조사에서 현 정부 들어 생활 수준이 나빠졌다는 응답은 43%나 됐다. 경제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를 잘 다룰 후보로는 트럼프가 두 자릿수 차이로 많이 선택받았다. 대통령 당락을 결정할 7개 경합주도 같은 잣대를 댄다. 쿡 폴리티컬 리포트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지역 사람들은 경제 상황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증시(6%), 실업률(13%)보다 생활비(54%)를 압도적으로 중시한다. 3곳은 초박빙 상황이지만 경합주 중 바이든이 앞선 지역은 현재 없다.
미국처럼 증시가 활황인 일본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다. 엔저를 바탕으로 물가가 오르며 경제 활력이 생겼다고 하지만 국민들 마음까지 그렇지 않다. 지난달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3월 통계자료에서 실질임금은 전년 같은 달보다 2.5% 줄어 24개월 연속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지지율은 20%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총리는 이달 들어 소득세·주민세를 1인당 연 35만원가량 정액 감세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물가 상승분을 웃도는 소득의 연내 실현"을 외친 그의 말을 믿는 일본인은 아직 별로 없다.
정책 효과를 대중이 체감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올해 초 내려갈 것이라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1년 가까이 5.25~5.5%에서 멈춰 있다. 금리를 내리려면 물가가 더 안정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이제 대선까지 5개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보다도 짧게 남아있다.
김주동 국제부장 news9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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