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신종마약 펜타닐의 습격
진통제는 너무나도 친숙하고 가까이에 있는 약이다. 두통 치통 생리통으로 시작되는 오래된 광고 속의 약뿐만 아니라 코로나19를 거치며 백신 접종 후 복용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세계적인 브랜드 해열진통제가 집에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근육통과 관절통이 있어 방문한 정형외과나 통증 클리닉이 아니더라도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내과 치과 같은 동네 병원에서 발행하는 처방전에도 대부분 들어 있고 약국에서도 판매 빈도가 높은 약이 진통제다.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본능적이어서 진통제는 종류도 다양하다. 해열진통제 외에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나프록센같이 엔세이드(NSAID)로 불리는 비스테로이드 계열의 소염진통제가 일반적이지만 마약성 진통제도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진통 효과를 발휘해 큰 수술 후나 말기 암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고통에 쓰이는데 의존성이 강해 반드시 의사 처방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다시 약한 마약성 진통제와 강한 마약성 진통제로 나뉜다. 약한 마약성 진통제는 만성 통증에 흔히 처방되고 강한 마약성 진통제는 주사 알약 패치 같은 제형으로 나온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신종마약 펜타닐은 강한 마약성 진통제다. 모르핀 코카인 대마 같이 식물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마약과 달리 펜타닐은 화학합성으로 만든 약이다.
마약의 대명사 필로폰(메스암페타민)도 펜타닐과 마찬가지로 화학적으로 합성해서 만든다. 차이점을 들라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며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필로폰과는 달리 펜타닐은 합법적으로 병원에서 처방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끔찍한 통증을 피하게 도와주는 고마운 약이 합법적으로 마약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현실을. 이 사건의 비극은 거대 제약회사의 탐욕과 돈을 위해 양심을 판 일부 의사들의 무분별한 처방이 합작해서 초래되었다.
원래 펜타닐은 아주 심한 통증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허가를 받았다. 신약을 출시한 제약회사의 입장으로선 약물의 짧은 사용은 매출 저하를 의미한다. 매출을 높이기 위해 약물을 규제하는 정부 기관과 의사를 상대로 한 치열한 로비가 펼쳐진다. 약품 허가에 관여하는 공무원이 퇴직한 다음 취직할 수 있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리베이트 명목으로 의사에게 처방량에 따라 거액의 돈이 오가는 것은 기본이다. 이 모든 일이 최근 20여 년간 일어났고 그로 인해 미국은 약물 오남용으로 한 해 10만 명이 사망하는 재앙을 겪고 있다.
‘좀비 랜드’로 알려진 미국 필라델피아의 켄싱턴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기괴한 자세로 있는 좀비 같은 사람이 거리에 넘쳐난다.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인데 수가 너무 많아 경찰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다. 모르핀보다 100배 강한 진통 효과를 나타내는 펜타닐을 투여하면 뇌 속에서 신경전달 물질 도파민이 엄청나게 분비되어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과도한 환각과 환상을 맛본 사람은 마약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된다. 치사량이 2mg에 불과해 결국 호흡이 마비돼 질식으로 죽는다.
문제는 펜타닐 중독이 태평양 건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18년 806만 건이었던 펜타닐 처방이 2022년에는 1411만 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각종 SNS를 통해 마약을 하는 나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고 고교생까지 내려온 중독자들 사이에서는 펜타닐을 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 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한다. 3년 전에는 부산 경남 청소년 41명이 펜타닐 패치 남용으로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펜타닐 외에도 합성대마 야바 엑스터시 GHB(물뽕) 등 신종마약이 활개를 치면서 해가 갈수록 마약사범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같은 재난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와 경각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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