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넘지 말아야 할 선
최근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The 8 Show’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The 8 Show’는 8명의 남녀가 각자의 이유로 의문의 공간에 들어오며 시작한다. 이때 흥미로운 설정은 카메라 너머에서 쇼를 감상하고 있는 이들에게 재미를 선사할수록 게임 시간은 늘어나고, 이는 곧 참가자들의 상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쇼의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8명의 남녀와 의문의 공간은 우리 사회의 콘텐츠 시장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드라마 속 설정처럼 우리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그에 맞는 마땅한 돈을 지불한다. 그 돈을 바탕으로 콘텐츠 창작자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다시금 대중에게 평가받는다. 이는 얼핏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모습처럼 보인다. 더 큰 재미와 만족감을 제공하는 창작자가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확보할 수 있기에, 생산자 입장에서든 관객 입장에서든 나쁠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다만 쇼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비교적 평화롭게 시간을 쌓아나가던 쇼의 양상은, 쇼의 관객들에게 더 큰 재미를 선사해야 한다는 목적 아래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오로지 더 자극적인 것만을 원하는 관객들의 욕망은 참가자들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게 만든다. 그 선은, 우발적인 폭력을 넘어 철저하게 계획된 폭력이었다.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참가자는 이미 시작할 때부터 쇼가 폭력적으로 변할 것을 우려했지만, 결국 이러한 흐름을 막지 못한다. 쇼의 관객들은 선을 넘었다며 참가자들을 저지하기보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지불하며, 참가자들에게 선을 좀 더 과감하게 넘을 것을 권한다. 이 모든 것은 ‘재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드라마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로 시선을 돌리면, 참가자들이 그토록 막고자 했던 폭력적인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인기 있는 드라마와 영화, 웹툰 등을 살펴보면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강한 자만이 복수를 하고, 강한 힘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와 치열하게 싸우거나 때려 부수지 않는, 어쩌면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콘텐츠는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처럼 폭력성으로 점철된 콘텐츠들은 대중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얻으며 막대한 돈을 번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폭력성으로 물든 콘텐츠로 가득해졌고, 그렇지 않은 콘텐츠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물론 폭력성이 가미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자극적이기만 한 작품이라 평가하긴 어렵지만, 대화와 타협, 용서를 다룬 콘텐츠는 사라지며 그 자리에 오로지 복수와 폭력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건 우리가 한 번쯤은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드라마 속 참가자들이 쇼가 폭력적으로 흘러가는 걸 결국 막지 못한 것처럼, 우리 사회 역시 대중문화 콘텐츠가 폭력적이고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걸 결국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건 아닐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각자의 사연과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나누었다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쇼는 시작과 동시에 종료됐을 것이다. 쇼의 관객들은 참가자들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걸 선택하지, 이들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모습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으니 말이다. 더 자극적인 게 차고 넘치는데, 때리고, 부수고, 복수하고, 죽이는 게 훨씬 더 재미있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따분하고 재미없으니 말이다.
드라마에서 쇼를 만든 이들이 재미를 위해 폭력을 기꺼이 선택하는 모습과, ‘The 8 Show’를 기꺼이 선택하는 우리의 모습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이게 너희들이 그토록 원했던 게 아니냐고, 드라마 감독은 카메라 너머에 숨어 있는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정녕 더 나은 사회를 갈망한다면, 재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극적인 콘텐츠에 그저 열광하기보다, 이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지는, 언제나 우리가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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