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수상작은 재미 없는 웰메이드? 다 옛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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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수상작은 재미없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201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봉준호)을 포함해 최근 수년간 칸영화제 수상작들이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아니지만 역대 칸영화제 상영작 중 최장 기립박수 1위(22분)를 기록한 '판의 미로'(기예르모 델 토로, 2006)는 판타지와 공포라는 마니악한 주제로 흥행 면에서 나라별로 다른 경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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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성·재미 겸비한 알짜영화
- 위기맞은 장편영화계 새 활로
‘영화제 수상작은 재미없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201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봉준호)을 포함해 최근 수년간 칸영화제 수상작들이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다. 그간 ‘예술성 강한 영화’를 선택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칸영화제의 이 같은 변화는, 팬데믹 이후 위기를 맞은 영화산업에서 극장용 장편영화의 건재함을 증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5일 폐막한 제77회 칸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아노라’(숀 베이커)가 차지했다. 젊은 여성 스트리퍼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현지에서도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작품이다. 전 세계 영화매체의 평점을 바탕으로 매일 칸영화제 상영작의 별점을 매기는 스크린데일리는 높은 점수인 3.3점(4점 만점)을 줬다. 칸영화제에만 스물세 번째 참여한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티켓이 없어 보지 못한 영화다. 상영 시간에 극장 앞에서 ‘노쇼’를 기다린 대기줄도 이례적으로 무척 길었다”고 회상했다. 영화 관계자 다수는 ‘아노라’가 추후 극장 개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간 칸영화제 수상작은 “작가주의와 예술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극장 개봉에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게 사실이다. 흥행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사례들은 ▷펄프픽션(쿠엔틴 타란티노, 1994·2억1400만 달러)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2002·120억 달러) ▷트리 오프 라이프(테런스 맬릭, 2011·6100만 달러) 등 대체로 10여 년 이전에 머물러 있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아니지만 역대 칸영화제 상영작 중 최장 기립박수 1위(22분)를 기록한 ‘판의 미로’(기예르모 델 토로, 2006)는 판타지와 공포라는 마니악한 주제로 흥행 면에서 나라별로 다른 경향을 보였다. 이 분야 2위(20분)인 ‘화씨 9/11’(마이클 무어, 2004)은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작 글로벌 흥행 2위(2억2240만 달러가량)를 기록하고 있다.
이 흐름은 2018·2019년 각각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과 ‘기생충’(봉준호)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특히 ‘기생충’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물론,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2억7000만 달러가량을 벌어들이며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흥행수익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축제가 열리지 못한 2020년 이후에도 수상작의 흥행은 이어졌다. ▷2021년 최대 화제작이자 해외 영화제를 휩쓴 ‘티탄’(줄리아 뒤크루노) ▷마블 시리즈 등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국내 관객 5만 명을 동원하며 이례적 장기 상영 기록을 세운 ‘슬픔의 삼각형’(루벨 외스툴룬드, 2022) ▷팬데믹 이후 프랑스 영화에서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두고 국내에서 각본집까지 발매된 ‘추락의 해부’(쥐스틴 트리에, 2023) 등이다.
전문가들은 영화제 수상작들의 흥행 행진이 팬데믹 이후 위기에 빠진 극장용 장편 영화를 구원하는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제 출품작은 상업영화보다 적은 예산으로 제작할 수 있고, 다양한 영화적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창작자 입장에서는 영화제를 통해 영화문화 다양성을 더욱 확장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출품 편수는 줄고 있지만 영화제도 그만큼 작품성과 재미를 겸비한 ‘알짜 영화’를 발굴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이 칸영화제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뜻깊다.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가 제안한 패러다임이 다른 영화제와 영화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는 영화 관련 정부 예산이 축소돼 ‘제작 텃밭’마저 더욱 황폐해진 상황이다. 한 영화산업 전문가는 “칸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BIFF) 등 영화제에서 보석 같은 영화들을 발굴하고, 그 작품들이 흥행하는 선 순환의 길이 열렸다고 본다”며 “한국도 영화제·극장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장편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관련 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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