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대종상 최대 위기… “파산에 내분까지, 이대론 개최 어렵다”

신정선 기자 2024. 6. 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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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산하 단체 비대위 출범
이사장 퇴진·회계 공개 요구

국내 최고(最古) 영화상인 대종상의 올해 개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개최권을 가진 한국영화인총연합회(영협)는 지난해 파산 선고 이후 회생 절차를 밟고 있었으나 최대 채권자가 최근 ‘회생 동의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끝내 파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일부 산하 단체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양윤호 영협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대종상 행사 대행업체가 영협의 계약 파기를 이유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도 이어져 대종상이 설립 이래 최대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협, 파산 가능성 높아지며 설립 이래 최대 위기

영협 파산을 신청한 김진문(87) 영협 고문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무능한 현 집행부 체제로는 대종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영협 회생에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고문은 “오죽하면 반백년 몸담은 영협의 파산을 신청했겠느냐”며 “양 이사장이 책임지고 사퇴하면 채무 탕감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최대 채권자인 김 고문이 동의하지 않으면 영협의 회생은 사실상 어렵다.

영협은 빚을 갚을 여력이 전혀 없는 상태다. 김 고문의 채권액은 3억6700만원이나 파산 선고 당시 영협 통장에는 62만3076원이 전부였다. 올해 초 법원에 제출된 파산관재인의 보고서에서도 “영협의 보유 자산은 대종상 상표권과 노후화된 집기비품이 유일해 채무 지급 불능 상태”라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비대위 “대종상 집행내역 공개하고 이사장 퇴진을”

김 고문과 양 이사장은 지난달 사태 타개를 위해 면담을 가졌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영협 산하 8개 단체 중 조명감독협회, 기획프로듀서협회를 중심으로 비대위가 구성됐다. 감독협회 회원 중 일부도 참가했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윤지원 조명감독협회 이사장은 본지에 “그간 영협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 알면서도 쉬쉬했던 다른 협회에서도 잇따라 비대위 참여 뜻을 밝히고 있다”며 “양 이사장의 책임을 물어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소송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영협 회원은 약 2000명이다. 윤 위원장은 “회원 100여 명이 비대위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비대위 측은 집행부의 불투명한 회계를 문제 삼고 있다. 윤 위원장은 “최근 2년간 대종상 집행 내역을 회원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양 이사장이 영협을 개인 회사처럼 운영한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5월 영협 산하에 서울시영화인연합회가 신설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커졌다. 서울시영화인연합회의 등기상 설립 목적 중 ‘대종상 개최’가 명시된 점을 두고 비대위는 “양 이사장이 대종상을 빼돌리려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양 이사장이 최근 영진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에 대해서도 “영협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사욕이 심하다”고 비판했다. 회생을 위해 걷었던 모금의 사용 내역을 밝히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협 살리기 모금에는 447명이 참여해 2051만1000원이 모였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양 이사장은 “일부 세력의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양 이사장은 본지 통화에서 “서울시영화인연합회는 예총의 권유로 서울시와 원활한 협의를 위해 설립한 것”이라고 했다. 영진위원 선임에 대해서는 “원래 영화계에서 영진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권했으나 영협 업무를 고려해 영진위원만 맡은 것”이라고 말했다. 채무 변제 계획에 대해 이상우 영협 사무총장은 “향후 회비를 걷고 지원금을 모으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영협은 대종상 행사 대행업체였던 다올엔터테인먼트가 양 이사장 취임 직후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당했다며 제기한 3억원 손해배상소송에도 대응해야 한다. 김명철 다올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영협 갈등의 최대 피해자는 일방 계약해지를 당한 저희 업체”라며 “2심에서 패소하더라도 대법원까지 가서 손해배상을 받겠다”고 말했다.

◇영화계 “수십년 곪은 문제 터졌다”

영화계에서는 수십 년간 누적된 영협의 고질적인 문제가 터졌다는 반응이다. 영협은 과거 일부 관계자들의 횡령 의혹까지 불거지며 대종상 권위를 추락시켰다. 영협의 전 간부 A씨는 협회 자금 수억원을 횡령하고 수감 중인 아들에게 월급 명목으로 매월 약 170만원을 지급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파산관재인 보고서의 영협 평가에도 ‘조직위원회와 영화 단체의 갈등, 파벌 싸움과 공정성 논란’이 지적됐다. 중견 영화인 B씨는 “영협은 그간 영화계 원로분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운영하면서 현장 영화인들의 관심 밖에서 멀어졌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영협이 환골탈태해 대종상이 정상 개최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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