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前 ‘대형오피스 줍줍’처럼… 물류센터 헐값되자 해외자본만 신났다
공실 증가, 임대료 하락으로 국내 물류센터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는 가운데, 해외 투자자들이 가격이 떨어진 수도권 물류센터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위기로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것을 기회 삼아 이른바 ‘줍줍’에 나선 것이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가격이 폭락한 국내 대형 오피스 빌딩을 해외 자본이 대거 사들였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한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 관계자는 “앞으로 금리가 안정되고, 물류 수요가 증가하고 사업성이 살아날 때를 대비해 양질의 물류센터를 싼값에 사들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했다.
◇물류센터 수요 위축되자 해외 자본이 ‘줍줍’
2일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자본의 국내 상업용 부동산 투자 규모는 총 23억달러(약 3조1855억원)로 집계됐다. 주택이 아닌 오피스 빌딩, 상업시설, 호텔, 공장·창고 같은 부동산을 사들인 금액으로 2022년(17억달러)보다 35% 증가했다. 특히 국내 물류센터에 대한 투자가 전체 투자금의 70% 수준인 16억달러(약 2조2160억원)에 달했다.
미국계 부동산 투자사 AEW캐피털은 지난해 국내 페블스톤자산운용과 함께 인천 서구 로지스허브(3100억원), 경기도 여주시 가남 물류센터(2840억원)를 샀다. 캐나다 투자사 브룩필드자산운용은 인천 서구 청라 물류센터를 6590억원에 사들였고, 미국 투자사 KKR도 경기도 오산에 있는 로지폴리스 물류센터를 4670억원에 샀다. 싱가포르계 메이플트리와 캐피털랜드, 호주계 로고스프라퍼티 등도 수도권에서 물류센터를 새로 사들였다.
국내 물류센터 시장은 코로나 기간에 쿠팡과 컬리 같은 이커머스가 급성장하면서 공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수도권 물류센터는 2018~2021년 연평균 70만평(약 231만㎡)이 공급되는 데 그쳤으나, 2022년에는 118만평(약 390만㎡), 지난해에는 169만평(약 560만㎡)이 공급됐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팬데믹 완화와 경기 침체 우려로 전자상거래 수요가 정체되자 물류센터 시장은 과잉 공급의 여파로 공실이 늘고, 임대료가 내리기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 수도권 물류센터 공실률은 10.3%로 전년 동기(3.9%)보다 6.4%포인트 증가했다.
이에 국내에서 물류센터 투자 수요가 급감했지만, 오히려 해외 자본들은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렸다. 국내 중소 시행사들이 개발을 추진하던 물류센터가 착공도 못 한 채 사업이 중단되고, PF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매로 넘어가는 경우까지 생기자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삼은 것이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2020년까지는 국내에서 인허가된 대부분의 물류센터가 착공했지만, 2021년에는 74%에 그쳤다. 인허가 후 착공에 성공한 물류센터 비율은 2022년 27%로 떨어지더니 작년에는 4%에 불과했다.
한 물류센터 컨설팅사 관계자는 “내년부터 물류센터 수급 불균형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에다 알리·테무 같은 중국 이커머스 진출로 수요가 다시 급증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며 “자동화 시스템 구축이 쉬운 수도권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외국 투자자들의 문의가 많다”고 했다.
◇여전히 비싼 오피스 투자는 ‘반 토막’
코로나 직전인 2019년 25억달러(약 3조4625억원)에 달했던 해외 자본의 국내 상업용 부동산 투자는 2020~2022년 연평균 19억달러(약 2조6315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물류센터 위주로 다시 반등해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다만 전통적으로 해외 자본이 선호하던 국내 오피스 투자 규모는 6억달러(약 8310억원) 수준으로 전년보다 47% 급감했다.
북미 투자자의 국내 오피스 투자는 KKR의 서울 SK남산그린빌딩 매입(2550억원) 단 한 건에 그쳤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재택근무 확산으로 미국·유럽의 오피스 시장이 크게 타격을 입은 뒤로 외국계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며 “서울 대형 오피스 빌딩은 공실이 적고,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탓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 미국 주요 대도시 오피스 공실률은 19.8%이지만, 서울 대형 오피스 빌딩 공실률은 2.9%에 불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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