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잔치’된 세계 모터쇼…제네바 모터쇼 120년만에 문 닫는다
1905년 시작돼 세계 5대 모터쇼로 꼽히는 ‘제네바 모터쇼’가 120년 만에 문을 닫는다. 제네바 모터쇼 조직위원회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내년부터 모터쇼를 무기한 중단하고 조직 해산 절차를 밟는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사태 등을 이유로 5년 만에 열린 2월 모터쇼의 초라한 성적이 폐지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메르세데스-벤츠·BMW·현대차그룹 등 주요 완성차 업체 35개가 참석한 2019년과 달리, 올해 행사엔 르노·BYD(비야디) 등 6개 업체만 찾았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 톱3 중에선 한 곳도 찾지 않았다. 이런 탓에 방문객도 60만명에서 17만여 명으로 급감했다. 2023년 조직위원회가 카타르에서 처음으로 개최했던 모터쇼는 내년에도 계속되지만, 제네바에선 더는 모터쇼가 열리지 않는 것이다.
제네바 모터쇼는 1905년부터 최신 기술과 디자인의 경연장이었기에 완성차 업계에선 완전 폐지 결정이 지닌 상징성이 더욱 크다는 평가다. 특히 스위스에는 완성차 업체가 없기 때문에 독일·미국 등 전통적 자동차 강국에서 열리는 모터쇼와 달리, 특정 국가에 치우치지 않은 기술 경쟁의 장으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세계적으로 모터쇼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자국 업체가 없는 스위스에서 가장 먼저 모터쇼가 폐지된 셈이다.
다른 글로벌 모터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적 규모의 주요 모터쇼를 찾는 자동차 회사들 발길은 2010년대 들어 점차 줄기 시작했고,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행사가 잇달아 연기되면서 추세는 더욱 가속됐다.
자동차 산업은 매년 성장하는데 기술과 디자인, 성능 경연의 장인 모터쇼가 몰락하는 까닭은 뭘까. 이는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자율 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가 가까워지는 것과 연관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미 모터쇼에서 발을 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로 몰리고 있다.
◇모터쇼 벗어나 IT 업체와 협력 강화한다
올 1월 CES에는 최근 여러 국제 모터쇼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참여했다. 현대차그룹은 CES에서 수소차, SDV(소프트웨어가 중심인 차량), AAM(미래 항공 모빌리티) 등 주요 기술에 대한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메르세데스-벤츠, 혼다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AI·전기차 시대에 걸맞은 신기술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CES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기술 각축장이 됐다.
모터쇼의 몰락은 자동차에 정보기술(IT)이 집중되는 것과 관련이 크다. 앞으로 미래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과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자동차 회사만의 기술로는 개발이 쉽지 않다. 눈에 띄는 IT 업체 기술을 선점하고, 이들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모터쇼가 아닌 CES를 찾는 이유다.
신차 공개 방식 등 자동차 시장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과거 모터쇼는 신차와 신기술을 공개해 자동차 애호가들과 일반 시민에게 신차 주목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유튜브 등 온라인 신차 공개가 많아지면서 모터쇼는 더 이상 홍보나 마케팅 수단으로서 활용도가 떨어졌다.
◇모터쇼, 지금 형태로는 지속 안 될 것
주요 모터쇼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으로 불렸던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CES 영향을 가장 직접 받았다. 매년 1월 열리는데, 2010년대 중후반부터 같은 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완성차 업체들을 빼앗기는 일이 계속됐다. 그러자 2020년에는 6월로 개최 시기를 바꿨다가 코로나로 그해 행사를 열지 못했다. 2022년 코로나로 4년 만에 열린 파리 모터쇼는 전시 기간을 2주에서 5일로 줄이고, 전시 면적을 절반으로 축소했다.
유럽 최대 모터쇼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2021년 개최 도시를 뮌헨으로 바꿨다. 이름도 뮌헨 국제 모빌리티쇼(IAA·Internationale Automobil-Ausstellung)로 바꿨다. 일본 도쿄 모터쇼도 2023년 재팬 모빌리티쇼로 이름을 변경했다. 두 국가 모두 자동차뿐 아니라 우주·항공 등 모든 이동 수단을 아우르는 ‘모빌리티’란 단어를 넣어 모터쇼 콘셉트를 확장했다. 반도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최고경영자(CEO) 등이 대거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신차와 신기술을 공개하는 장소로서 모터쇼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미래차 전환기에 맞는 형태로 변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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