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무 기업이나 상장시킨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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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세계 3대 성장주 전문 주식 시장이 있다.
얼마나 잘나갔는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이곳으로 앞다퉈 옮기려 했고, 정부가 유가증권시장에 기업들을 묶어두려고 당근책을 내놓을 정도였다.
미국만 해도 기업공개(IPO) 시장보다 인수합병(M&A) 시장이나 벤처캐피털의 세컨더리 마켓에서 기술주와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회수가 더 많이 이뤄진다.
두 번째는 2~3년 전부터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는 기업이 부쩍 늘고 자진 상장폐지 기업도 잇따라 나오고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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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세계 3대 성장주 전문 주식 시장이 있다. 역사를 따지면 미국 나스닥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한때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그 거래 시스템을 배우겠다며 줄을 섰다. 그중엔 대만도 있었다. 살짝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나. 2000년대 초반 코스닥시장이 정말 이랬다. 얼마나 잘나갔는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이곳으로 앞다퉈 옮기려 했고, 정부가 유가증권시장에 기업들을 묶어두려고 당근책을 내놓을 정도였다. 닷컴 붐을 타고 코스닥지수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었다.
기술주 랠리는 '남의 집 잔치'
지금 전 세계의 기술주 랠리는 언뜻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올 들어 펄펄 끓는 기술주 덕에 나스닥을 비롯한 14개국 증시가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쯤 되면 그 열기의 한복판에 당연히 코스닥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코스닥은 그냥 그저 그런 시장이 됐다. 과거 최고 기록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 채 20년 넘게 옆걸음만 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코스닥의 시가총액 비중은 나스닥의 10%에 육박했다. 지금은 1.5%도 안 된다. 도대체 이 시장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문제를 열거하면 한두 가지겠느냐마는 본질은 단순하다. 검증이 안 된 기업들을 갖다 놓고 개인들끼리 사고팔라는 식의 구조가 20년 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성장성 특례다. 2018년 도입된 이 제도는 증권사가 특정 기업에 대해 ‘성장성이 있다’고 건의하면 이를 토대로 상장시켜주는 것이다. 기술 수준이나 재무제표는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상장한 기업이 지금까지 20곳이다. 하지만 5년이 되도록 제대로 흑자를 내는 기업이 없다. 절반가량은 매년 적자 폭이 불고 있다. 어떻게 이런 기업들만 골라놨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고는 개인들에게 베팅하게 했다. 이 와중에 퇴출 비율은 세계 주요 증시에서 가장 낮다. 혹자들은 코스닥을 도박판에 비유하는데, 사실 기분 나빠해야 할 쪽은 도박이다.
과도한 IPO 의존도부터 낮춰야
독일, 일본 등이 성장주 거래 시장을 장외로 돌리거나 폐기한 것은 신약 개발사 같은 고도의 기술 분야 기업 거래를 개인 자율에 맡기려니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만 해도 기업공개(IPO) 시장보다 인수합병(M&A) 시장이나 벤처캐피털의 세컨더리 마켓에서 기술주와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회수가 더 많이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기업들의 자금 회수가 대부분 IPO에 의존한다. 그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웬만한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 분야 기업들을 상장시킨 뒤 기관들이 공모 투자로 한탕하고 나면, 개인들은 종목토론방이나 리딩방, 인플루언서 등을 통해 귀동냥해가며 사고파는 구조다.
최근 코스닥에 나타난 흥미로운 움직임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올해 개인의 코스닥 순매수 금액보다 서학 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이 더 많다는 것이다. 개인이 코스닥에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두 번째는 2~3년 전부터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는 기업이 부쩍 늘고 자진 상장폐지 기업도 잇따라 나오고 있는 점이다. 괜찮은 기업들까지 하나둘씩 짐을 싼다는 얘기다. 코스닥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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