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범죄자 인권보다 소중한 것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경찰서에 20대 주폭(酒暴) 한 명이 끌려왔다. 만취한 채 70대 택시 기사에게 행패를 부렸고 출동한 경찰관의 얼굴을 때렸다고 한다. 지구대 경찰들에게 약 30분간 “무식해서 경찰 한다”고 난동을 부렸고, 근무 중이던 여경을 성희롱하기도 했다. 사무실 탁자를 발로 걷어차며 “경찰은 무슨 병X” “X만 한 새끼들이 들어와서” 같은 욕설을 쏟아냈다. 보다 못한 A(49) 경위는 이 주폭의 뺨을 8차례 때렸다. 주폭은 “경찰에게 맞았다”며 119에 신고했고, A 경위는 독직폭행(瀆職暴行)과 복종 의무 위반 등 사유로 감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지난달 A씨 해임 처분을 확정했다. 독직폭행이란 조사 대상자 등을 폭행,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스스로의 직무를 모독했다는 뜻이다. 현행 형법은 이런 행위를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로써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독직폭행은 사법 관련 공무원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경우에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A씨가 20대 주폭의 뺨을 때린 행위가 독직폭행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A씨가 해임될 정도는 아니었다는 일선 경찰 목소리도 상당하다. 2017년부터 5년간 독직폭행으로 징계위에 넘겨진 경찰관 15명 중 해임이나 파면을 당한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관악서 20대 주폭’처럼 난동을 부리는 현행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폭행이라는 점이 감안됐다. 2022년 12월 식칼을 양손에 쥔 흉악범을 걷어차 해임된 경찰관은 소청 심사를 거쳐 정직 1개월로 감경됐다.
A씨 해임 처분이 알려지자 일각에선 ‘평소에도 감정적이었다’ ‘경찰 조직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비하했다’는 식의 익명 비난도 나왔다. 일부 경찰 관계자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징계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 경위는 20대 주폭을 찾아가 사과했다. 주폭이 요구한 합의금 500만원을 채우려고 동료 경찰들까지 나섰다.
검찰도 A씨 독직폭행 혐의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경찰이 그를 중징계(해임 또는 정직) 대상으로 결정했다곤 하나 왜 반드시 해임이었느냐에 대한 근거 역시 희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경찰은 난동 수준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 매뉴얼도 갖추고 있지 않다.
주폭과 취객이 몰려오는 경찰서 지구대에 새벽까지 앉아 있으면, ‘지옥이란 이런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난동자들을 상대하는 경찰들의 인내심은 언제나 위태로워 보인다. 이번 A씨 해임 판단은 그래서, 현장에서 분투하는 구성원의 마음보다는 범죄자의 인권을 우선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라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은 너무 진부해서 하고 싶지 않다. 범죄자들에게도 물론 인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권력을 압도하는 순간, 공동체의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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