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이 만난 사람]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 쇠처럼 일했지만… 죽어서도 바당서 물질허멍 살켜

김윤덕 기자 2024. 6. 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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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1세에 ‘해녀 은퇴식’ 치른 제주 최고 상군 김유생·강두교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에서 ‘해녀 은퇴식’을 한 구순의 김유생·강두교 할머니가 첫물질 할 때 입었던 ‘물소중이’ 옷을 다시 꺼내 입고 활짝 웃었다. 옛날로 돌아간 듯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양종훈 사진작가

“아이구, 곱수다.” “그짓말 맙서게.” “촘말이우다. 시집가도 되쿠다.”

올해 아흔둘, 아흔한 살인 김유생, 강두교 할머니가 카메라 앞에서 열다섯 소녀처럼 웃었다. 처음 물질할 때 입었던 물소중이 옷을 다시 꺼내 입으니 옛날로 돌아간 듯 가슴이 콩콩 설렌다며 얼굴을 붉혔다.

이날은 두 해녀 은퇴식이 있는 날. 늙어 다리에 물질할 힘 없으면 그만두는 거지 웬 겉치레인가 싶지만, 제주 해녀를 촬영해 세계에 알려온 사진작가 양종훈(상명대 교수)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걸맞은 은퇴식을 해드려야 한다”며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와 의기투합해 마련한 행사였다.

25일 낮 1시, 두 해녀의 ‘마지막 물질’로 은퇴식이 시작됐다. 고무옷으로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간 두 사람이 눈 깜짝할 새 소라와 전복을 건져 올리자 후배 해녀들과 동네 사람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때 해녀 100명을 이끌고 바다에 들어갔던 제주 최고 상군(上軍) 김유생이 “나 죽걸랑 바당(바다)에 뿌려도라. 죽어서도 물질허멍 살켜(물질하며 살겠다)”고 해서 구경꾼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올라올 때 본 전복은 잊어라

-지금 입고 계신 옷이 ‘물소중이’인가요?

김유생(이하 김): “열다섯, 첫 물질 할 때 입고 들어간 옷이지. 네모난 천 하나로 소중한 부분만 가린다고 이름이 물소중이라.”

강두교(이하 강): “고무옷 나오기 전엔 이것만 입었지. 얇아서, 추워서 여름에도 물에 들어가면 한두 시간밖에 못 있었어.”

-10대 소녀들 같습니다.

강: “이쁘꽈? 촘말 이쁘꽈?”

-물질은 언제 처음 시작하셨어요?

김: “(해녀로서) 큰물질은 열다섯? 열여섯? 여기서 나서 구십둘 나도록 물에서만 살았지. 바닷속 어느 마을에 전복이 있고, 구쟁기(소라) 있고, 성게, 문게(문어) 많은지 독수리처럼 다 보였지.”

강: “난 막둥이라 열여덟에야 들어갔어. 귀덕으로 시집와선 (김유생) 언니 따라다니며 배웠는데, 숨이 짧고 귀가 아파 먼바다엔 못 가고 겉에서만 돌았지.”

-김유생 할머니는 귀덕이 낳은 제주 최고 상군이었다고요.

김: “50명, 많을 땐 해녀 100명을 끌고 먼바다에 갔지. 붉바리, 다금바리를 대나무 작살로 잡았어. 망사리 가득 물건을 싣고 올라오면 우리 씨어멍(시어머니) 웃으며 팔러 가시고.”

-바다가 무섭지 않으세요?

김: “무섭긴 뭐가 무서와? 욱신욱신 아프다가도 물에만 들어가면 싹 나았수다.”

-물질하다 다친 적은 없나요?

강: “박으로 만든 태왁이 현무암에 부딪쳐 깨지기라도 하면 (목숨이) 간당간당했지. 성게 잡다 가시에 찔리고, 솔치에도 찔리고. 가시 박힌 자리엔 오줌을 부었는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뒷날 가시가 저절로 빠졌지.”

-해녀는 등에 관을 지고, 칠성판을 지고 들어가는 일이라던데 구십이 넘도록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김: “내려갈 때 본 전복은 따도, 올라올 때 본 전복은 잊는 것. 전복이 대작대작 붙어 있어도 하나 더 따려고 되돌아갔다간 숨이 모자라서 죽어. 욕심 때문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

강: “그게 다 자식들 연필 값이고, 공책 값이고, 책가방 값이니 다시 가 줍고 싶은 마음 태산이지만 잊어야 살 수 있지. 그래서 오래오래 일했지.”

-즐겨 드시는 장수 음식이 따로 있나요?

강: “된장에 보리밥(웃음).”

김: “찬물에 날된장 풀어 오이랑, 자리돔이랑 썰어 넣은 물회가 일등이라.”

-아픈 곳은 없나요?

김: “혈압약 한번 안 먹었어.”

강: “틀니도 안 했수다.”

-150살까지 사시겠네요.

김·강: “큰일나지. 아이고, 나라 망하지(웃음).”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앞바다에서 ‘마지막 물질’을 한 김유생(왼쪽)·강두교 해녀가 전복과 소라를 건져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양종훈 사진작가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는 여인들

-구십 평생 중 언제가 제일 좋으셨어요?

강: “지금. 지금이 제일 좋아. 옛날엔 돈 구경을 못 했어. (돈이) 날 데가 없었어. 자식들 학비 내야지, 공책 사 줘야지. 흉년엔 먹을 게 없어 해초를 젓갈에 찍어 먹고 물질을 나갔어. 맨날 울멍 살았어.”

김: “죽을 때 되니 이제 막 좋아. 제국(일제) 시절에, 4·3에 우리는 좋은 세상 본 적이 없수다. 지금은 나라에서 연금 주지, 노인 일자리 주지, 할망들만 좋아.”

-노인 일자리요?

김·강: “담배꽁초 줍기. 이틀에 한 번, 두세 시간씩.”

-아직도 일을 하세요?

김·강: “집에 있으면 우울증 나니까, 답답하니까.”

-4·3 사건은 기억나세요?

김: “그럼. 산사람(남로당)이랑 순경들이 밤낮으로 싸우는 통에 항아리 속에도 숨고, 천장에도 숨었지. 낮에는 순경들이, 밤에는 산사람들이 내려와 총을 쏴대서 애먼 사람들만 죽었지.”

강: “열아홉살 학생이던 우리 오빠가 그때 죽었수다. 일본으로 도망간 남자들도 많고. 제삿날엔 섬 전체가 웁니다게.”

-영감님들은 언제 돌아가셨어요?

김: “마흔에, 우리 막내가 세 살 때. 바다에 갔다 쓰러져서 스무 날 만에 돌아갔지. 혼자서 딸 다섯을 키웠어.”

강: “우리 할아방은 육십, 아니아니 칠십인가(웃음)?”

-물질만 해서 자식들 키울 수 있나요?

김: “물질도 하고, 남의 집 밭일도 하고. 임신해서도 물질하러 갔다가 아기가 막 나올라고 하면 물 밖으로 나와 애를 낳았지.”

-세상에!

강: “제주 여자는 쇠(소)보다도 못해.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 물허벅에 물 길어오고, 우영팟(텃밭)에서 배추 뜯어 와, 우는 애기 등에 업고 아궁이에 불 때가며 밥 짓고 국 끓이고.”

-그럼 언제 쉬세요?

김: “비 오는 날도 못 쉬지. 망사리 터진 거 꿰매야지, 양말 터진 거 기워야지. 구덕에 아기 눕혀 발로 흔들어 재우면서 손으로는 바느질했지. 한 살 두 살 마지로 태어난 애들은 오줌 쌌다고 울지, 술 먹고 들어온 남편이 게워놓은 거 치워야지. 잠은 언제 잤는지 기억도 안 나(웃음).”

-남자들은 일을 안 했어요?

강: “가끔 고깃배도 타고 돌도 치우고 밭일도 했지만 그저 술 먹는 게 직업(웃음). 물질해 남편 외상값 갚으러 가는 게 일이라.”

-확 도망가시지.

김: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지. 그때는 육지도 모르고, 여기가 세상 전부인 줄 알았지. 이제 생각하면 두루해, 두루해(멍청해, 멍청해). 하하!”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에서 평생을 산 김유생(오른쪽) 강두교 해녀는 "고맙고, 고맙수다. 덕택에 우리 애들이 살았수다. 죽어서도 (내 몸) 바당에 뿌려주면 영영 물질허멍 살크라"고 말했다. /양종훈 사진작가

◇며느리 지은 밥을 내가 왜 먹어?

-고부 갈등은 없었어요?

김: “씨어멍과는 잘 지냈지. 같은 해녀라 서로 호되게 힘든 거 알고, 이해성도 높고.”

강: “제주 집은 씨어멍과 며느리 부엌이 따로 있수다. 같은 울타리에 있어도 안거리, 바깥거리라고 해서 부모, 자식네가 밥을 따로 먹고 살림도 따로 하지. 그래서 부딪칠 일, 간섭할 일이 없지.”

-경제적으로 독립해 있다는 뜻인가요?

김: “부모 자식 간 서로 돈을 섞지 않아. 죽는 날까지 내 밥은 내 손으로. 며느리가 왜 밥을 지어다 바쳐? 내가 할 수 있는데.”

강: “씨어멍이 오히려 며느리에게 용돈을 줬지(웃음).”

-해녀가 된 딸이 있나요?

김: “없어. 나는 막 하라 했는데 힘들다고 안 한대.”

강: “우리한테 물질 좀 그만 헙써, 그만 헙써 애원을 하지. 어멍(엄마) 숨비 소리 들으면 가슴 아프다고, 애간장 터진다고.”

-그래서 해녀 자식들은 잘못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김: “무난히 자랐지. 육지서 은행원 하는 아이도 있고, 제주 사는 아이도 있고. 손주에 손주까지 열다섯이 넘어. 명절이면 와글바글. 먹이고, 닦고, 뒤치다꺼리 하느라 똑 귀찮아(웃음).”

강: “서울서 회사 다니고, 제주서 농사도 짓고. 더 잘 키웠어야 하는데 미안하지.”

김: “그만하면 일등이지, 뭐가 미안?”

강: “언니네 다섯 딸은 효녀 중에 효녀. 아들보다 잘해요. 최고야, 최고.”

-요즘 여자들은 너무 편하게 살죠?

김: “아니아니. 편하게 살아야지. 즐기며 살아야지. 옛날 씨어멍 말이 딱 맞아. 젊을 때 혼저(어서) 먹어라, 늙으면 먹고프지 않다. 살아보니 그래. 늙으니 먹고픈 게 하나도 없어. 자리물회 한 그릇이면 모를까(웃음).”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림읍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열린 은퇴식 '마지막 물질'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해녀들. 맨 오른쪽이 강두교 할머니, 그 옆이 김유생 할머니다. 최고령자인 두 해녀를 비롯해 모두 9명의 해녀가 귀덕2리 어촌계(김성근 어촌계장)가 마련한 은퇴식에 참석했다. /뉴스1

◇상군인지, 똥군이지 한눈에 안다

-막상 은퇴한다니 기분이 어떤가요?

김: “반갑지, 섭섭하지.”

강: “물질하러 가는 해녀들 보면 막 쳐다보게 되지, 부러워서(웃음)”

-이제 바다에 들어갈 수 없나요?

김: “문게(문어)라도 잡고 싶은데, 젊은 해녀들 싫어하지. 수온이 올라가 제주 바다에 오분자기도 사라지고, 전복도 찾기 힘든데 우리까지 들어가면 부에나지(화나지).”

-지금도 젊은 해녀들보다 물질을 더 잘하신다던데요.

김: “물에선 날다람쥐인데 물건 끌고 바다 밖으로 나오는 게 힘들어서, 다리에 힘이 없어서.”

-해녀 학교에서도 학생들 가르치셨다고요?

김: “한 명씩 데리고 들어가 돌 뒤집는 법, 발에 힘 빡 주고 디디고 서는 법, 물살에 도망가는 성게 놓치지 않고 잡는 법 가르쳤지. 하루만 가르치면 상군 될지, 똥군(하군) 될지 바로 알아지지(웃음).”

-젊은 해녀들 예쁘지요?

강: “예쁘지, 해녀 된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촘말 예쁘지. 해녀가 소멸된다는데 더 많이 늘어나게 양성해 주면 좋겠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실래요?

김: “돌아가긴 왜 돌아간? 오래 아프지 말고 어느 날 툭 쓰러져 죽어야지. 자식들 괴롭히지 말고.”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태어나셔야죠.

강: “돈 많은 사람 호금(조금도) 안 부러워. 건강이 최고. 내가 제일 행복하다 생각하면 그게 행복이우다.”

-남자로 태어나고 싶진 않고요?

김·강: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우리 집은 벌써 부자 됐지(웃음).”

-바다에 작별 인사 하신다면.

김·강: “고맙고, 고맙수다. 덕택에 우리 애들 살았수다. 죽어서도 (내 몸) 바다에 뿌려주면 영영 물질허멍 살크라.”

-구십 평생에 주인공 된 날이 오늘이 처음인가요?

강: “그렇지. 이런 꼴 안 봐봤지(웃음).”

김: “오늘이 제일 기쁜 날! 귀덕리 만세! 우리나라 만세!”

☞김유생·강두교

김유생: 1932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15세부터 물질을 시작했다. ‘귀덕이 낳은 최고 상군 해녀’로 불리며 5명의 딸을 키운 뒤 지난 5월 은퇴했다.

강두교: 1933년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에서 태어나 18세부터 물질을 시작했다. 귀덕리로 시집와 김유생 해녀 그룹의 일원으로 물질하며 4남매를 키운 뒤 지난 5월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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