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눈] 마음 속 생각이 목소리보다 크게 들린다 - 의정(醫政) 갈등을 보며
지난 3월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내 담낭에 결석과 용종이 생겼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주일 뒤 추가로 실시한 면담에서 검진센터 의사는 암은 아닌듯 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대학병원에서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라고 말했다. ‘담낭은 제거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큰 문제 없겠지’하며 짧은 의학지식을 동원해 자위하며 센터를 나섰지만 불안한 마음에 득달같이 대학병원으로 달려가 전문의 상담을 신청했다.
내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상담 일정은 3주 뒤로 잡혔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의대정원 확대 문제로 대통령과 의료계가 정면 대치하기 때문인가 생각하니, 잘난 다른 사람들의 일로 생각했던 문제가 당장 나의 문제로 다가왔다. 나름 건강한 체질이라 생각했던 터라 언론계에 종사하면서도 의정 갈등을 ‘너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외면했구나’하는 반성도 함께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싸움의 양측이 감추고 있는 속셈이 너무 빤히 보여 국민들도 모두 알고 있는 만큼 총선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 나겠지 하는 안이한 판단도 나의 무관심에 한몫 했다. 취임 이후 추진한 많은 정책들에서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라는 평가를 받아온 대통령으로서는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의료개혁 문제를 관철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옳다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을 것이고, 의료계도 전문분야에 대한 제도개혁을 우중(愚衆)이 뽑은 선출직 정치권과 무식한 언론이 합세해 여론몰이로 좌지우지하려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엘리트 의식이 발현해 전면 대항에 나섰음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의 다툼이 장기화 하는 것을 보니 두 진영 모두 자신들이 숨긴 속내는 드러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듯 했다.
2400여 년 전 ‘기심(機心)’이라는 말로 당시 세속인심을 꼬집었던 중국의 한 성현의 통찰이 현 상황에 고스란히 적용되는 모습이 부조리극처럼 느껴졌다. 기계지심(機械之心) 또는 기교지짐(機巧之心)으로도 표현하는 ‘기심’은 속셈을 숨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도모하는 마음을 뜻하는 말로 열자의 황제편에 나오는 ‘구로망기(鷗鷺忘機)’라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옛날 바닷가에 갈매기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일 바닷가로 나가 갈매기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갈매기들은 그를 친구처럼 여기고 그가 나타나면 떼로 몰려와서 어깨에 앉기도 하는 등 즐겁게 놀았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네가 갈매기들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도 소일거리로 갈매기와 놀고 싶으니 한 마리만 잡아다오”라고 말했다. 아들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싶어 갈매기를 잡아다 주려 바닷가로 나갔지만 갈매기는 하늘을 맴돌 뿐 내려오지 않았다.’ 국내의 한 번역자는 해당 구절을 ‘마음 속 생각이 목소리보다 크게 들린다’는 말로 축약했다.
3주 뒤에 만난 대학병원 의사는 내게 현재로서는 수술해야 할 정도의 상태가 아니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도 없는 만큼 6개월 단위로 추적관찰을 하자며 10월의 어느 날로 진료 일정을 잡아줬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의정(醫政)분쟁을 다시 ‘타인들의 싸움’으로 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순간, 열자가 ‘기심’으로 우려했던 것은 ‘숨긴 생각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날 걸 알면서도 마음 속 생각을 뻔뻔하게 고수하는 위정자들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 이후 계속된 양자 대립은 지난달 16일 의료계에서 신청한 의대 정원 확대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서 각하·기각하며 정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일단락됐다. 대학교육협의회도 의대 정원 확대를 포함한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은 휴진 확대 방침을 밝히고 있고 병원에서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도 복귀할 가능성이 낮아 의정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그날 병원문을 나서며 “10월 전에는 어떻게든 해결되겠지”하고 생각하다가 어쩌면 이런 내가, 나 같은 우리가, 그들의 뻔뻔스러운 ‘기심의 고함’을 초래한다는 자성에 많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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