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현역 판정 85.5%로 늘었지만… ‘50만 강군 시대’ 이제 원천 불가능
미·영·독 등 세계가 비슷… 스웨덴·노르웨이 등 징병제 부활·확대
무조건 대규모 병력 배치보다 작지만 이기는 군대로 탈바꿈해야
저출생의 영향이 가장 크게 미치는 곳은 군대이다. 징집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생 감소는 병역 자원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2003년 병무청이 펴낸 ‘병무 54호’에서 당시 징집자원 과장은 2020년 이후가 되면 병역 자원이 순수 현역병 소요를 충족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현역병 입영은 2020년까지 23만명 내외 수준을 유지하였지만 2021년 21만5000여 명으로 감소한 이후 2022년에는 18만6000여 명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20년 전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제25조 제1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비 병력 규모는 2020년까지 50만명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률이 제정되던 2006년에는 70만 명에 달하던 상비 병력을 감축하기 위한 목표로 50만 명이라는 규모가 제시되었고, 국방부는 2022년 12월 ‘2023~2027 국방중기계획’에서도 상비병력 규모를 2027년까지 50만 명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상비병력 50만 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22만 명을 충원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인구구조로 이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징병검사에서 현역 판정 비율은 1980년대 50% 수준이었지만 2022년에는 85.5%를 기록하고 있어서 이를 더 높이는 방식으로 병력을 충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50만 명의 상비 병력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국방부는 2023년 7월 상비 병력 규모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가용 자원을 고려하여 안보 위협에 대응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국가 안보와 관련한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가 간 전면전 발생이 현실화되자 병력 확보는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모병제로 필요한 병력을 확보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독일의 경우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2023년 모병된 병력은 2022년에 비해 오히려 1500명 감소하였다. 영국군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 14년 연속으로 모집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어서고 있지만 연간 8000명의 모병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있다. 미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22년 미 육군은 6만명 모집 목표에 25% 미달하는 약 4만5000명만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군은 MZ 세대에게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독일 및 영국 등에서 다시 징병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서 징병제 부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남녀 평등과 질적 향상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는 스웨덴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10년 징집제를 폐지했던 스웨덴은 2018년 징집제를 부활시켰는데 만 18세가 된 남녀에 대해 지능, 심리상태 등을 온라인으로 검사한 후 이 가운데 20%에 대해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하여 상위 3분의 1을 징집 대상으로 선발하고 있다. 징집 대상 인구의 5% 수준으로 징집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데 스웨덴 정부는 2030년까지 이 비율을 10%로 증가시킬 계획이다. 징집 대상자는 11개월 동안 복무하며 매월 약 62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전체 입대자의 15%는 여성이다. 까다로운 선발 기준을 통과함에 따라 스웨덴 사회에서 현역 입대자는 지적 능력과 체력 및 정신적으로 완비된 사람으로 간주되어 기업의 우선 채용 대상이 되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도 스웨덴과 유사한 방식으로 선발하는데 징집 대상자 가운데 17%가 복무하고 있으며, 여성 비율은 35% 수준에 이르고 있다.
대규모 전면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스웨덴 등의 사례는 높은 선발 기준보다는 여성에 대한 징병의 근거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실제로 북유럽 국가들은 남녀 구분 없이 징집을 시행하며, 독일과 영국 모두 남녀 구분 없이 군사훈련을 받거나 지역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국방 의무를 부여하는 쪽으로 징병제 부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적정 병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내놓는 것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위협의 종류와 우선순위를 정하고, 대응에 필요한 병력의 질과 양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병력 운용과 편제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대응 방안은 지속 가능한 것인지 등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155마일 휴전선에 배치된 경비 병력은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소규모 침투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상시 배치하는 것이 타당한지 고려해봐야 한다. 철조망이 아닌 적의 이동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대규모 요새화를 통해 감시 및 경비에 투입되는 병력을 감소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생겨나는 각종 사령부들이 꼭 필요한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보병들이 드론을 이용하여 적 참호와 장비를 타격하는 것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드론 사령부의 필요성은 의문이다. 보직을 유지하기 위한 불요불급한 조직이 얼마나 되는지, 전투 능력을 상실한 노후 시설과 장비를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적정 병력의 규모가 결정된 이후에 여성을 포함한 징집 대상 확대, 복무 기간 조정 등이 이루어져야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간 출생아 40만 명 수준을 기록한 것은 2016년이다. 우리가 안보와 방위태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남은 시간은 이들이 입대할 때까지의 약 10년이다. 이 기간 동안 작지만 싸울 수 있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군대로의 변화 여부가 우리의 안보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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