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47] 거진항(巨津港)의 방어
어쩌다 보니 칼럼 써서 먹고사는 팔자가 되었는데, 가끔 독자들로부터 대접을 받을 때는 ‘내 팔자’에 대한 보람도 느낀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독자 D씨로부터 거진에 한번 바람 쐬러 올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고기를 잡습니까?” “10여 년 전부터 방어를 잡습니다. 선생님 칼럼 20년 동안 읽었으니까 방어회 좀 대접하고 싶네요.”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가니까 거진항에 도착이다. 항구에서 바라다보이는 푸른 동해바다는 시적(詩的)이다. 동해는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 맑고 명료한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하는 바다이다. 펄이 많고 탁한 서해바다가 소설적이라면 남해는 에세이 같다고나 할까. 방어는 원래 제주도에서 눈발이 날릴 때 잡히는 생선이었지만 온난화의 영향으로 이제는 강원도 거진항에서도 잡히고 있었다. 사과 재배지도 북쪽으로 올라왔지만 방어도 위로 올라왔던 것이다. 한류성 어족인 명태에서 난류성인 방어로 교체되었다. 작년에는 방어가 5월부터 주로 잡혔는데 올해는 4월부터 잡히기 시작했다.
거진항 앞에는 방어를 잡는 구역이 정해져 있었고, 그 구역마다에는 지역 어촌계에서 임대료를 받고 지정한 주인이 따로 있었다. 말하자면 문전해답(門前海畓)이었다. 방어를 잡는 그물 형태는 정치망(定置網)이다. 36m 깊이의 바닷속에다 그물을 아파트처럼 고정시켜 놓고 매일 새벽 그물에 걸려 있는 방어를 꺼내 오는 방식이었다. 그날 새벽에 그물에서 꺼내온 방어는 100마리 정도였다. 8kg 이상 나가는 큰 놈이 60마리, 4~5kg 되는 작은 게 40마리. 큰 놈 1마리를 중개인에게 넘기는 가격은 비싸지 않다. 11kg짜리는 대략 성인 20인분의 횟감이 나온다고 한다.
‘예술은 식후사(食後事)’라는 말이 있듯이 방어 대자로 회 한 접시를 다 먹고 나니까 비로소 주변 풍광에 관심이 간다. 거진항 바로 위에 있는 화진포(花津浦)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김일성 별장 터에서 바라다보니 바다와 호수가 병렬로 자리 잡고 있는 희귀한 풍경이다. 화진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호(潟湖)이다. 석(潟) 자가 갯벌이란 뜻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호수를 석호라고 한다. 민물 7, 바닷물 3 정도 될까. 화진포에는 광어, 숭어, 도미가 서식하고 유일하게 민물성 어족인 가물치가 끼어서 산다. 호수의 고기를 먹기 위해 청둥오리, 흰색의 고니, 바다 갈매기가 호수에 내려앉아 있을 때는 ‘꽃밭’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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