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올림픽과 휴전, 그 허약함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달 6일 올림픽 기간 동안의 휴전을 제안했고 이어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휴전에 대해 논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의 휴전은 ‘스포츠 제전을 통한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 건설’을 목표로 함과 동시에 올림픽 기간 동안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고대 그리스의 전통을 기념하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안해 19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 때부터 실시됐다. 이후 유엔 총회에서도 여름, 겨울 올림픽을 앞두고 2년 주기로 결의돼 왔다. 파리 올림픽 휴전 결의 기간은 올림픽 개막 7일 전인 7월 19일부터부터 올림픽에 이어 열리는 패럴림픽 폐막 후 7일인 9월 15일까지다.
하지만 러시아는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개막일인 8월 8일 조지아를 침공했고, 2014년 2월 자국에서 열린 소치 올림픽 폐막 후 크림반도를 침공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시점도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폐막 직후였다. 이는 모두 올림픽 휴전 결의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믿을 수 없다고 보는 이유는 이 같은 행적 때문이다. 올림픽 기간 동안의 휴전은 명목상으로는 훌륭한 것이지만 이를 어기고자 할 때 사실상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올림픽 이상이 현실 속에 벌어지는 전쟁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1980년 구소련에서 열렸던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세계 66개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규탄하며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는 보이콧을 단행했다. 올림픽 역사에 기록된 최대 규모의 보이콧이다. 하지만 이런 보이콧으로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저지할 수 없었고 소련은 1989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속했다.
이런 사례에서 비롯된 것이 ‘올림픽 보이콧 무용론’이다. 올림픽 보이콧만으로는 특정 국가의 전쟁이나 정책 자체를 바꿀 수 없고 올림픽 준비를 해온 선수들의 기회만 빼앗긴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통해 등장한 것이 ‘외교적 보이콧’론이다. 올림픽에 참가는 하되 올림픽 무대를 통해 정치 선전에 나서려는 국가를 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은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내 선수들이 메달을 따면서 개인적 기회를 잃지 않게 했다. 그 대신 외교사절단을 보내지 않으면서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를 부각시켰고 이로써 올림픽을 통해 자국의 위세를 뽐내려던 중국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했다.
파리 올림픽 기간의 휴전 논의가 무산되면 이번에는 ‘올림픽 보이콧 무용론’에 이어 ‘올림픽 휴전 무용론’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는 올림픽을 통해 인류 평화에 기여한다는 올림픽 정신이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전쟁 의지 앞에서는 별다른 대책도 없이 무력화되고 만다는 냉정한 현실 세계의 반영이다.
‘올림픽 보이콧 무용론’과 ‘올림픽 휴전 무용론’은 모두 올림픽의 대외적 권위가 약화돼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대신 올림픽을 각종 정치적 선전무대로 이용하려는 각국의 시도는 강화되고 있다. 이는 올림픽 개최 및 참여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의 개입 없이는 올림픽이 유지되기 힘든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올림픽은 평화적 이상과 명분은 내세우되 이를 위한 물리적 뒷받침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권위가 축소되어 가는 한편, 그 무대 위에서 각국의 이해관계 혹은 정치적 선전은 오히려 심화돼 가는 과정에 있다. 향후 올림픽의 재도약과 부흥은 이런 점들을 얼마나 개선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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