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민족 재통일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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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이라면 보통 1990년 동서독 통일을 생각하지만, 엄밀히 보면 1990년 동서독 통일은 독일 재통일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1871년 비스마르크가 주도하여 독일 제국으로 통일한 역사적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의 땅 대부분을 잃어 영토 면에서 불완전하고, 당시 삼국에 현재와 같은 동일 민족의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학계의 지적을 고려할 때, 민족통일의 역사적 사례로는 고려의 통일 경험이 더 적합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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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이라면 보통 1990년 동서독 통일을 생각하지만, 엄밀히 보면 1990년 동서독 통일은 독일 재통일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1871년 비스마르크가 주도하여 독일 제국으로 통일한 역사적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남북한 통일을 이루면, 재통일이나 3차 통일로 불릴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신라의 삼국통일과 고려의 후삼국통일이라는 역사적 전례가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사정은 민족통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모범으로 삼거나 참고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물론 가까운 시기 다른 나라, 특히 독일의 통일 경험을 배우는 것이 중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독일 통일에 관해서는 현재까지 비교적 많이 연구된 것 같다. 그에 반해 통일에 관한 우리 자신의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는 작업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의 땅 대부분을 잃어 영토 면에서 불완전하고, 당시 삼국에 현재와 같은 동일 민족의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학계의 지적을 고려할 때, 민족통일의 역사적 사례로는 고려의 통일 경험이 더 적합해 보인다.
고려의 후삼국통일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통합과 포용으로 통일 과정을 주도한 태조 왕건이다. 왕건은 1,000년 넘게 이어진 민족통일국가를 한국사라는 바다에 출범시킨 영웅임에도 그에 합당한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우리가 왕건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2000년대 초반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사극 '태조 왕건'의 왕건 역을 맡은 남자 배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왕건에 대한 저평가와 함께, 고려 유물과 유적이 수도 개성과 서경인 평양 같은 북한 지역에 집중된 까닭에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왕건에 대한 시각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왕건에 관한 강렬한 시각 자료가 20세기 말에 등장했다. 1992년 북한 개성시에 있는 왕건릉인 현릉에서 발굴된 왕건 동상이다. 길이 140㎝의 청동 좌상인데 머리에 황제의 관인 통천관을 쓰고 있는 나체상 형태로 발견되었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이 동상에는 고구려, 불교, 토속 신앙의 요소가 섞여 있다고 하는데 북한 학자들도 처음에는 불상으로 착각했을 정도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왕건의 이미지와는 간극이 매우 크다.
이 간극의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까지 고려사 인식과 기술의 주된 텍스트는 15세기 조선에서 간행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이다. 두 역사서는 당시 조선의 지배이념인 성리학의 시각으로 고려사에 관한 자료를 선별하여 재구성한 결과물로 현재까지 우리가 고려사를 보는 관점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 간극의 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와 무관심일 것이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자기인식 심화 과정 자체이자, 자기인식 심화와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자기인식의 심화는 통일에 관한 우리 자신의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성찰이 있어야 우리 민족의 통일은 '경제 대박'류의 차원을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고차원적 사건이 될 것이다.
우재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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