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론 추진한 횡재세 속도조절…종부세 완화 이어 감세정책으로 후퇴

김윤나영 기자 2024. 6. 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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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 만들어 조세법 전반 검토
“기업들 기여금·출연금 강화”
진보 학계 “증세 정치 펴야”

비정상적인 외부 요인에 의해 기업이 막대한 초과이익을 거뒀을 때 부과하는 횡재세 도입을 당론으로 추진해온 더불어민주당이 속도조절에 나섰다. 횡재세 도입을 당장 당론 입법으로 추진하기보다는 기업들의 기여금·출연금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학계에서는 민주당이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폐지 방침을 밝히는 등 감세 정책으로 후퇴할 게 아니라 본격적인 증세 정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2일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횡재세 세목을 신설하지는 않고 기업들의 기여금이나 출연금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2일 확인됐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가 거론한 횡재세를 당장 (입법으로) 추진하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횡재세 세목을 새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들이 내던) 기존 기여금이나 출연금을 강화해 횡재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간 민주당은 횡재세 도입을 사실상 당론으로 추진해왔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은행권의 기여금 조성 또는 횡재세 도입으로 만들어진 재원으로 고금리로 고통받는 국민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정유사의 고에너지 가격에 따른 횡재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을 앞둔 지난 4월22일에도 횡재세 추진 의지를 거듭 밝혔다.

횡재세는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외부 요인으로 초과수익을 올렸을 때 매기는 세금이다. 스페인·헝가리 등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영국 등에서 코로나19 위기와 유가 상승을 계기로 2022년부터 도입하고 있다. EU는 화석연료 기업이 직전 4년 평균보다 20% 넘게 거둔 초과이윤에 대해 ‘연대기여금’ 명목으로 최소 33%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렇게 거둔 세금은 에너지 취약계층과 중소기업 지원에 쓴다. 적용 대상 기업도 확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횡재세 도입 법안을 추진했다. 금융회사가 거둔 순이자수익이 직전 5년 치 평균의 120%를 초과하면 초과수익의 최대 40%를 ‘상생 금융기여금’으로 거두는 ‘횡재세법’(금융소비자보호법·부담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사실상 당론 발의했다. 이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현행법 내에서도 정유업계나 은행을 상대로 횡재세와 비슷한 성격의 부담금을 거둘 근거는 있다. 현행 석유사업법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고유가로 이익을 본 정유업계를 상대로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은행 등 금융회사가 금융 취약계층을 위한 출연금을 내도록 규정한 ‘서민금융생활지원법’도 있다. 은행 등이 서민금융진흥원에 내는 햇살론(저소득·저신용자 대출 프로그램), 소액생계비대출 등의 재원이 이에 해당한다.

현행법 조항 활용한 ‘출연금 부과’
전문가 “횡재세 도입 취지 퇴색”

민주당은 일단 정부에 이 같은 현행법 조항 활용을 촉구하되,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22대 국회에서 별도 입법을 통해 횡재세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조만간 임광현 의원이 단장을 맡아 조세체계 전반에 대해 검토할 ‘공정조세체계를 위한 논의기구’(가칭)를 발족할 방침을 세웠다. 이 기구에서 종부세 완화 방안과 함께 횡재세법 등 조세 관련 법률 전반을 검토하기로 했다.

진보 학계에서는 야권이 높은 횡재세 도입 여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증세 정치’를 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정유업계와 금융업계는 이익을 보고 영세 자영업자는 손실을 봤는데, 정치권이 횡재세를 거두면 약자들이 이익을 본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증세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얼미터가 지난해 11월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에서 횡재세 도입 찬성 여론은 70.8%에 달했다.

나 교수는 “사실상 과세나 다름없는 부담금 부과를 법으로 명문화하는 형태가 아닌 기업의 자발성에 기대는 기여금이나 출연금에만 기댄다면 횡재세 도입 취지가 후퇴할 수 있다”며 “민주당이 종부세 폐지로 후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횡재세 부과 방침에서도 후퇴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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