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60대 데이트 살인
최근 자녀에게 ‘안전하게 이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서울 강남역에서 20대 의대생이 연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중 하나가 “이별 통보는 비대면으로 해라”다. “씻지 말고 더러운 냄새 풍겨라” “집안이 망했다고 하라” “큰돈을 빌려달라고 하라” 등 나름의 ‘비책’을 알려주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걱정이 컸으면 이럴까 싶다.
▶데이트 폭력은 젊은층만의 문제도 아니다. 8년 전 부산에선 6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연인에게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다 경찰에 붙잡힌 일이 있었다. 그는 넉 달 동안 1600여 건에 달하는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한 해 뒤엔 60대 남자가 헤어진 뒤 만나주지 않는 50대 여성을 골프채로 무차별 폭행하고 염산까지 퍼부은 사건이 벌어졌다. 또 한 해 뒤엔 울릉도에서 일흔네 살 남자가 사귀던 일흔 살 여성에게 이별을 통보받고는 여자 집에 찾아가 욕설을 하고 창문을 부수다 경찰에 붙잡혔다.
▶60대의 데이트 폭력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2022년 기준 데이트 폭력 피의자 연령대는 20대가 3631명(36.8%)으로 가장 많았지만 60대도 404명(4.1%)이나 됐다. 급기야 엊그제 서울에선 60대의 데이트 살인 사건까지 발생했다. 60대 남자가 사귀던 60대 여성의 이별 통보에 격분해 이 여성과 그의 딸을 살해한 것이다. 그는 “우발적 범행”이라고 했다.
▶공자는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서양 철학자 칸트는 “인간이 이성을 완전히 사용하게 되는 시기가 대략 60대”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65세는 한 세대 전 45세의 몸으로 산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몸이 젊어져서일까. 잦아지는 60대 데이트 폭력 사건을 보면 이젠 60대에게 이순이란 말을 붙이긴 어려울 듯하다.
▶데이트 폭력은 가해자의 강한 소유욕 때문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고, 반대로 가해자의 자존감이 낮아 사랑을 쉽게 끝내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젊어진 60대’도 젊은이 못지않은 소유욕과 집착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 폭력 피의자는 2020년 8951명에서 지난해 1만3939명으로 늘었다. 눈치 빠른 로펌들이 이 시장을 놓칠 리 없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를 상대로도 선처받고 감형받는 ‘꿀팁’을 광고하는 로펌도 있다. 노·소(老少) 불문, ‘안전하게 헤어질 자유’가 위협받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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