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산분할’ 결정타 된 비자금 메모

장혜진 2024. 6. 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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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뒤집힌 판결, 왜?
노태우 ‘300억 규모 비자금’ 메모
노소영 관장 측 항소심 증거 제출
선경건설 명의 어음·사진 등 근거
“盧, 최종현에 자금 지원” 주장 인정
2심, 노 관장 재산형성 기여 고려
1조3000억 재산분할 판결 이어져
대법서 이대로 판결 가능성 제기
崔, 확정 땐 하루이자만 2억 육박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재판부가 파격적인 재산분할을 명령한 것은 SK그룹의 성장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막대한 자금’을 비롯한 유·무형적 기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 관장이 모친 김옥숙 여사가 적은 ‘비자금 메모’를 새롭게 제출한 것이 중요한 근거가 됐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를 크게 인정했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재산분할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는데, 이는 1심의 위자료 1억원·재산분할 665억원보다 각각 20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연합뉴스
재판부는 SK그룹이 1987년 2조원대이던 자산총액을 1992년 8조원대까지 끌어올리며 성장하는 데 노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재판부는 “1991년경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원고의 부친 최종현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했다. 노 전 대통령이 최 회장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300억원 규모의 ‘상당한 자금’을 전달했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김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50억원 어음 6장의 사진과 메모가 결정적 근거로 작용했다.

노 관장 측은 그간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다가 항소심 재판부에 처음 제출했다. 노 관장 측은 이 어음 6장 중 4장을 김 여사가 가졌고 나머지 2장은 노 전 대통령 형사 재판 중 추징금 완납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약속어음을 받은 것은 차용증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최종현에 300억원의 금전적 지원을 하고 받았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밝혔다.

비자금 존재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기업 입장에선 상당한 ‘리스크’가 될 수 있는데도 최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과의 사돈관계를 보호막으로 인식해 이같이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경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법원은 SK그룹의 태평양증권 인수와 이동통신 사업 진출,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에도 노 전 대통령의 ‘무형적 기여’가 상당했다고 봤다. 태평양증권 인수 과정과 관련한 세무조사, 은행감독원의 자금추적 조사, 관련 검찰 수사가 현재까지 일체 없었다는 점을 정황 증거로 들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 회장 측은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면서 상고 입장을 밝혔다. 또 항소심 판결문 파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지고 있다며 신원미상의 최초 유포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1일 밝혔다. 최 회장 측은 “자녀를 포함한 가족 간의 사적 대화 등이 담긴 판결문을 무단으로 퍼뜨린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라면서 “다수에게 판결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단호히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증거나 법리 문제를 떠나 ‘외도해 놓고 부인을 핍박했다’는 국민 감정을 제대로 자극해 백약이 무효인 사건 같다”면서 “재산분할 등 가사사건의 경우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는 경우가 드물어 이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대법원에서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돈을 다 줄 때까지 하루에 1억9000만원이 넘는 이자 부담까지 안게 된다. 2심 재판부는 재산분할금에 대해 판결 확정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지연이자를 붙였다. 2심대로라면 연 690억4085만원, 하루에 1억8900만여원의 지연손해금을 떠안는 셈이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왼쪽),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연합뉴스
‘세기에 이혼’에 대한 관심은 정치권에도 불붙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당시 비자금에 대해 소문이 파다했지만 검찰은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2001년 제정됐기에, 그 이전의 불법행위에는 적용되지 못한다. 그래서 최·노 부부는 이 수익을 고스란이 이어받았다. 이게 맞는가”라고 지적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결혼·이혼제도를 시대상에 맞게 조정하는 데 꾸준한 관심을 갖고 노력하겠다”면서 개혁신당의 ‘이혼에 관한 파탄주의 규정’ 명시·‘유책배우자 재산의 최대 50% 수준 징벌적 위자료’ 제도 도입 등 총선 공약을 소개했다.

장혜진·이종민·이진경·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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