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반대, 이제 끝내야 [세상읽기]

한겨레 2024. 6. 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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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어느 집단의 선출직 대표자이든 본인의 이익과 집단 전체의 이익이 충돌하면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본인의 이익을 내려놓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집단의 구성원이든 이러한 도리를 다하지 못한 대표자에 대해 책임 추궁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식회사의 이사에게는 이 지극히 당연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본인의 사익을 위해 전체 주주의 이익을 희생시켜도 회사에만 손해가 없다면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법원이 우리나라 상법 조문을 편협하게 해석한 결과다. 상법 제382조의3에 따르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조문에서 충실의무의 대상으로 회사만 언급했으니, 주주에게는 충실의무가 없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이 지난 20년간 지켜온 공식 입장이다.

이런 상식 밖의 대법원 판례를 국회 입법으로 바로잡기 위해 상법 개정의 필요성이 지난 10년간 학계와 투자자 단체를 중심으로 줄곧 제기됐다. 아무리 기다려도 판례가 뒤집힐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22년과 2023년에는 민주당 의원들의 발의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총주주 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대통령실과 금융감독원장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야의 이러한 공감대 형성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와 재계는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부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되어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의미에 그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한편 재계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이사들을 옥죄어 혁신과 성장에 필요한 모험자본 투자를 꺼릴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다시 말해 한쪽에서는 효과가 너무 없어서, 다른 한쪽에서는 효과가 지나쳐서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 중간에 있다. 즉, 혁신과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지배주주로부터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특별히 총수 일가나 경영자의 이익을 위한 자본거래로부터 일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총수 아들이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낮은 전환가격에 전환사채를 발행해 일반 주주의 지분가치를 희석하거나, 계열사 간 합병 후 총수 아들의 지배권이 강화되도록 불리한 합병비율임에도 이에 찬성해 일반 주주가 주식을 저가에 교환되도록 하거나, 불법행위에 가담한 대표이사의 재선임을 위해 회사 자금으로 매입한 자사주를 전략적 제휴를 명분으로 우호 주주에게 매각하거나 우호 주주의 자사주와 맞교환해 일반 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침해해도 지금은 일반 주주가 이러한 결정을 한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거나 업무상 배임죄로 검찰에 고소할 수 없다. 현행법상 이사는 주주에 대해서는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며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사를 대신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다. 회사에는 직접적인 손해가 없는 거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소송 제기도 가능해지고, 검찰 고소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가능성을 의식한 이사들은 이러한 자본거래 안건이 이사회에 상정됐을 때 반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일반 주주의 이익이 보호되는 만큼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상당 부분 해소된다.

한편,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되어도 이사들이 혁신과 성장에 필요한 모험자본 투자를 꺼릴 가능성은 없다. 충실의무란 총수 일가나 경영자의 사적 이익이 일반 주주의 이익과 충돌하는 사안에만 적용되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한 미국의 경우 이해관계의 충돌이 없는 사안에는 경영 판단의 원칙을 적용한다. 즉, 투자나 기업 인수로 주주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애초에 이사들이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손해배상책임이 없다. 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이더라도 독립이사로만 구성된 위원회가 동의했거나 주주총회에서 일반 주주 과반이 동의했다면 이해관계 상충이 해소되었다고 보고 거래의 공정성이 인정된다.

결국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은 자본거래를 통한 총수 일가나 경영자의 사적 이익 추구를 옹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상법 개정에 동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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