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남녀평등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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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의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라는 작품이 화제다.
이 드라마는 일본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 인물과 동료들의 분투를 그린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 많은 사람이 감동하고, 공감하는 것은 지금의 일본에서도 여성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기업은 이익 추구의 관점에서 여성 차별을 완화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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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최근 일본에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의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라는 작품이 화제다. 이 드라마는 일본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 인물과 동료들의 분투를 그린 이야기다. 주인공은 1930년대 중매결혼을 권유하는 어머니의 뜻을 따를 수 없어 법대에 진학했고, 여성에게도 막 기회가 주어진 고등시험(현재 사법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변호사가 된다.
여성은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이나 여성은 변호사·판사가 될 수 없다는 당시 국가의 제도에 대해 ‘글쎄’라는 의문을 품는 것에서부터 주인공의 도전은 시작된다. 그리고 여성이 활약할 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개척해 간다.
이 드라마에 많은 사람이 감동하고, 공감하는 것은 지금의 일본에서도 여성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기업은 이익 추구의 관점에서 여성 차별을 완화해 가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시대, 우수한 여성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경영정책이다. 공직 사회에서도 여성 채용은 증가해 왔다. 국가공무원 채용자 가운데 여성 비율은 지난 15년 동안 25%에서 39%로 증가했다.
하지만 가정에서 여성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는 여전하다. 육아·가사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일이라는 분위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매년 출생아 수가 줄어 인구 감소가 가속화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출산·육아를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구조가 아직 정비되지 않은 것은 출생아 수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다.
오랜 세월 일본을 지배해 온 자민당은 여성 정책에 대해 심각한 모순에 빠져 있다. 일본에서는 결혼 후 부부가 동일한 성을 가져야 한다는 민법 규정이 있다. 대부분은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여성이 사회에서 경력을 쌓는 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어, 국민 다수가 선택적으로 부부별성을 인정하는 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도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에서는 남성 우위의 가부장주의가 지배적이다.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는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를 무너뜨린다’는 근거도 없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권위주의의 뿌리가 되는 ‘천황제’를 보면, 일왕은 남성만 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일왕의 지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 남성 황족은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과 그의 아들뿐이라 천황제 지속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자민당은 여성 일왕에 대해 일관되게 부정적이다.
가부장주의·권위주의는 일본 사회를 숨 막히게 하고, 일본을 갈수록 쇠약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자민당의 비자금 조성 문제로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다. 중의원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패하고, 기시다 총리의 퇴진도 거론된다. 여론조사에서는 정권 교체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구체적인 정책 과제는 많지만, 우선 인간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보장하도록 근대적 법·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일부 보수파가 말하는 전통의 유지냐, 개인의 자유롭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장하는 사회제도의 실현이냐의 대립 구도를 세워 국민이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일본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첫걸음이다.
서두에 소개한 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관습과 상식에 대해 그 근거를 묻고 자신의 삶을 관철시키려 했다. 처음에는 ‘파격적’, ‘비상식적’인 행동이었지만 점점 공감을 불러일으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어졌다. 현재 일본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의 삶을 추구하고 관습을 타파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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