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편을 든다면 [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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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시간과의 싸움이라 얘기해왔기에, 전세계가 파리협정을 통해 약속한 온도변화 목표인 1.5℃ 도달을 막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과학자들이 제시한 '시간'은 때론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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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시간과의 싸움이라 얘기해왔기에, 전세계가 파리협정을 통해 약속한 온도변화 목표인 1.5℃ 도달을 막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과학자들이 제시한 ‘시간’은 때론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으로 파리협정의 1.5℃ 탄소예산을 지켜낼 수 있는 시점으로 과학자 집단에 의해 합의됐던, 2018년 제시됐던 탄소예산의 고갈 시점은 ‘12년’이었다. 이제 벌써 6년이 지났고 남은 시간이 6년이 채 되지 않으니,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때론 가혹할 따름이다. 2018년 고등학생이었던 청소년이라면, 서른이 되기 전 탄소 예산이 고갈되는 꼴이니 말이다. 반대로 화석연료 산업계는 시간을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진 않았을까.
기후 대응 문제에 대한 청소년과 청년들의 문제제기는 때론 가혹할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을 옥죄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 4년 전 청소년들이 제기한 대한민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위헌소송이 그랬다. 청소년들이 성인이 될 만큼 충분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헌법재판소의 심리는 계속 지연됐다. 그리고 지금부터 3년도 더 전인 2021년 2월, 베트남 석탄화력 발전 사업에 참여한 두산에너빌리티의 사옥 앞에서 ‘그린워싱’ 수성 스프레이 시위를 한 청년 활동가들은 오랜 기간 대기업과 소송전을 벌어야 했다. 검찰이 제기한 형사 소송에 이어 두산에너빌리티 측에서 로고 교체 비용으로 청구한 184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3년 넘는 시간을 끌며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정작 잊힌 것들도 있다. 해당 기업의 베트남 사업 수주 과정에서 사업자인 한국전력이 감당할 것으로 지적됐던 1천억원대 규모의 적자, 수출입은행 등이 제공했던 1조원에 가까운 금융 지원, 이와 별개로 기업의 경영 부실로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2조원대 금융 지원 같은 것들 말이다.
청년 활동가들을 소송에 옭아매 놓고, 기업은 친환경으로 포장된 신규 화석연료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두산을 포함해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 한화, 에스케이 이엔에스(SK E&S) 같은 기업들은 또다시 베트남과 태국 등지에서 화력 가스 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터미널을 건설하기 위해 각종 양해각서(MOU)와 협약을 체결하는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업 추진 근거는 ‘탄소중립’ 달성이다. 먼 미래에 가스발전소에 수소를 섞어 태우면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드니, 국가의 탄소중립 계획에 활용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가격이 가스발전보다 싸진 걸 생각한다면, 전형적인 그린워싱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목요일, 대법원이 마침내 청년 활동가들의 시위에 대한 재판에서 활동가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파기 환송된 2심 법원의 유죄 판결은 다시 심리해야 한다. 두산에너빌리티 쪽이 청년들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이미 지난해 기각됐다. 4년 지연된 기후 헌법 소원은 얼마 전 2차 변론을 마치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기후 대응의 시계는 계속 흐르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골든 타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소송전이 있다면, 탄소예산이 모두 고갈된 후에야 결론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패배하는 쪽은 지금 목소리를 내는 청년과 청소년 활동가들이 아닐 것이다. 기후 대응이 시간과의 싸움이라지만, 시간은 결국 미래 세대의 편이다. 지난주 대법원 판결이 그랬듯 말이다.
그러니, 지금도 대규모 화력발전 수출을 계획 중이시라면 부디 하지 마시길. 금융 지원을 하실 예정이시라면 하지 마시길. 시간은 그쪽 편이 아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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