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대북확성기 방송 준비 만전”… 도발 수위에 비해 성급 우려도 [北 잇단 ‘복합 도발’]

구현모 2024. 6. 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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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北 회색지대 전술’에 대응 고심
北 ‘오물 풍선’ 총 1000여개로 파악
동·서부 전선 군부대서 날아온 듯
정부 “GPS교란, 비상대비 체계 운영”
합참 “현재까지 군사작전 제한 없어”
北, 대북 확성기 방송에 민감한 반응
전문가 “유효한 카드이자 위험한 카드”

북한이 최근 군사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후 오물 풍선, GPS 교란 등 복합도발을 이어오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의 회색지대 전술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보고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대북 확성기 재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28일 이후 남측으로 날려 보낸 대남 풍선의 개수는 1000여개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풍선에서 위험물질 등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풍선은 동·서부 전선 인근에 있는 북한의 군부대에서 날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재차 살포한 1∼2일 전국 곳곳에서 관련 신고가 잇따랐다. 지난달 28일 오후 9시부터 이날 오전 5시까지 오물 풍선 관련 112 신고가 514건 들어왔다. 물체 발견 신고가 295건, 재난문자 내용 등 관련 문의 신고가 219건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양천구·영등포구·마포구 등 서부지역에서 112 신고가 집중됐다.

사진=연합뉴스
전날 오후 9시쯤에는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 캠퍼스 교수연구동에서도 나뒹굴고 있는 대남 전단이 발견됐다. 경기는 고양·파주·부천·안양 등지에서, 인천은 미추홀·부평·서·중구 등지에서 밤사이 신고가 이어졌다. 강원 홍천·원주와 충북 청주·진천·충주, 경북 예천·안동 등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오물 풍선을 목격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시는 수도방위사령부, 서울경찰청,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연계해 24시간 상황실을 운영하는 등 실시간 상황 파악 및 대응 중이다.

북한은 지난달 29일부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매일 우리 쪽을 향해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공격도 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전 5시50분부터 31일 오후 5시까지 발신지가 북한의 강령·옹진 지역으로 추정되는 GPS 전파혼신 신고 건수는 총 932건(항공기 201건·선박 731건)으로 나타났다. 과기정통부는 GPS 전파 혼신 위기경보 주의 단계를 유지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항공기 지상항법시설·관성항법장비 사용, 선박 레이더·항로표지·지형지물 활용 등 예방조치를 수행하는 등 비상대비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합참도 현재까지 북한의 전파 공격으로 인한 군사작전에 제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지뢰 탐지 북한의 두 번째 대남 오물 풍선이 서울·경기 지역에서 약 600개 발견된 가운데, 군 장병들이 2일 오전 인천 중구 전동 인천기상대 앞에서 바닥에 떨어진 북한 오물 풍선 잔해를 지뢰 탐지기로 확인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북한의 이런 도발은 실제 무력 충돌이나 전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정도의 모호한 수준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를 높이는 회색지대 전술로 풀이된다. 회색지대 전술로는 해킹이나 소규모 테러, 가짜뉴스 유포, 국가 기간시설 파괴, 사회 혼란 등이 있다. 다만 당장은 한·미의 맞대응을 초래할 위험은 낮추는 수준의 도발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지만 점차 도발의 수위를 높여나갈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위성 발사 실패로 인한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다잡아야 하고 미국과 협상을 재개하기 전 한반도 위기감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현재까지 대남 오물 풍선에 대해서는 격추 등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낙하 과정에서 민간 피해가 발생할 우려와 풍선을 향해 사격하다 탄이 군사분계선(MDL) 이북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대남 풍선에 북한이 화생방 물질 등이 담겨 있다고 해도 풍선에 설치된 타이머로 인해 20㎞ 상공에서 폭발하면 지상엔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는 최근 일련의 복합도발에 대응해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방송은 주로 북한의 낙후된 체제를 비판하거나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한국 가요 등을 방송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남북 관계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1963년 서해 부근 휴전선 일대에서 처음 시작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1972년 7·4 공동선언과 2004년 6월 4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 이후 전면 중단되기도 했지만 북한의 심각한 도발이 있을 경우 재개됐다. 특히 2015년 8월에 있었던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 이후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재개했다. 재개한 이후 곧바로 남북 간 고위당국자 접촉이 이뤄졌고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포함한 ‘8·25 합의’를 도출했다. 북한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대북확성기는 우리 정부의 주 대응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한 군 관계자는 “군은 전방 지역에서 언제든 대북 방송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남 풍선을 날린 것만으로 대북확성기 카드를 꺼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북확성기 방송에 대해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으로 현재 시점에서 유효한 카드 중 하나이면서도 위험한 카드”라며 “우리가 강경하게 나가면서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의 전략이 꼬여버릴 수 있다. 다만 대북 방송을 하면 위기감이 고조되고 매우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운용의 묘를 잘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대량의 대북전단을 날리는 것도 검토해볼 만한 대응방안”이라고 덧붙였다.

구현모·김건호·이병훈·이정한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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