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뉴스 솎아내기] 걸음마 단계인 국내 상속신탁시장
고령화와 평균 수명 증가로 국내에서도 상속·증여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직 초기 단계인 국내 상속신탁 시장은 일본의 사례처럼 향후 상품이 다양화되고 수요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 입장에선 가족들 간 큰 갈등없이 원활하게 세대간 부의 이전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고령 인구 증가로 60세 이상 고령층이 가구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17년 32.2%에서 37.7%로 급등했다. 반면 같은 기간 39세 이하 비중은 14.7%에서 13.1%로 하락했다. 여유가 있는 퇴직 고령층이 두터워졌다는 뜻이다. 지난 2007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그 5년 후인 2013년부터 상속신탁 시장이 대중화됐다.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에서도 2031년부터 상속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초고령사회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인 20% 이상, 즉 국민 5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사회다.
이에 비해 부동산 가격 상승과 1~2인 가구 증가로 인한 상속세 공제 축소로 인해 과세대상 피상속인 수는 2017년 6986명에서 2021년 1만2749명으로 82% 늘었다. 상속재산분할 건수도 2018년 1710건에서 2022년 2776건으로 62% 증가했다. 앞으로 상속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맞춰 국내 금융기관도 2020년 이후 상속신탁 상품을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지난 1분기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유언대용신탁 누적 신탁액은 약 3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3% 증가하는 등 고객의 인식도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 비해 아직 크게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일본의 신탁시장 규모는 2023년 9월 현재 1580조엔(수탁고 기준)으로 2003년 이후 연평균 6%씩 성장했으며,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67%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가운데 특히 고령화·저금리 환경에서 재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다음 세대로 승계하기 위한 포괄신탁(종합재산신탁)이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포괄신탁은 단일 계약으로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 등 모든 재산을 종합적으로 관리·운용·처분하는 신탁이다.전체 수탁고 중 비중은 포괄신탁이 절반이 넘는 57.5%를 차지하고 있으며 금전신탁(33.2%), 재산신탁(9.3%) 순이다. 2003년 이후 연평균 수탁고 성장률도 포괄신탁이 7.5%로 금전신탁(4.5%), 재산신탁(4.3%)을 앞선다.
일본 정부는 가계자산 고령화 방지와 내수소비 촉진을 위해 상속 및 증여가 신탁을 통해 활성화되도록 꾸준히 제도를 재편해왔다. 2000년 재신탁 허용, 2004년 수탁가능재산 범위제한규정 폐지와 신탁업 영위가능기관 확대 등 신탁 관련 규제를 지속 완화해 다양한 신탁상품 등장을 유도했으며, 2013년엔 교육자금 및 결혼·육아 관련 신탁 이용 시 증여 비과세 혜택을 부여했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이에 맞춰 포괄적 상품·서비스 제공, 특화상품 공급,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상품 등을 내놓고 있다. 포괄적 상품·서비스로는 유언, 유언대용, 유산정리 등이 있으며, 생전에 상속자산을 신탁은행에 위탁하는 유언대용신탁은 대중화된 상태다. 유언은 신탁은행이 위탁자의 유언서 작성·보관·집행을 지원하는 서비스이며, 유언대용은 위탁자가 생전에는 본인을 수익자로 해 자금을 사용하고, 사후에는 위탁자가 지정한 수익자에게 남은 자산을 인계하는 대표 상속신탁 상품이다. 유산정리는 상속자의 상속절차를 신탁은행이 대행하는 서비스다.
가계자산 외에도 가업승계 및 생명보험 관련 상속신탁, 반려동물을 위한 상속상품, 상속 이전 후견인 지정 등의 서비스도 있다. 가업승계는 유가증권 신탁에 유언대용형 특약을 추가해 기업 오너가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원활히 상속할 수 있는 상품이다. 생명보험 관련 상품은 금전 외 사망보험금 상속에 대한 신탁을 제공한다. 펫신탁은 반려동물 주인(수탁자)이 사망할 경우 새 주인(수익자)에게 양육자금을 지원한다. 후견제도지원신탁은 상속 이전 치매 등으로 인한 자산관리 능력 상실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신탁은행에 자산을 위탁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밖에 일본 금융사는 신상, 재산내역, 유언 등을 생전에 기록하는 '엔딩노트', 웹 기반으로 유산정리를 처리 가능한 'WEB 유산정리', 무료로 디지털 상속 진단을 받고 관련 전문가를 검색할 수 있는 플랫폼 등 디지털 기반의 상속 관련 서비스도 제공중이다.
우리나라에선 부동산 중심의 가계자산 구성, 규제로 인한 상품 개발·운용 한계 등이 상속신탁 시장의 걸림돌로 지적돼왔다. 일본과 비교해 신탁 가능한 재산이 제한적이고, 합동운용 및 업무위탁도 제한돼 있다. 정부도 초고령화 시대를 앞둔 시점에서 규제를 적극 완화,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해줘야 한다.논설실장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수지 속으로 빠져드는 30대…경찰·소방관이 극적으로 구했다
- 뉴진스님 싱가포르 공연 결국 취소…"불교요소 제외 합의 못해"
- "함께 자고 일어났는데 죽어 있었다"…전 남친이 신고
- 술집 공용화장실에 보디캠 몰래 설치…불법 동영상 촬영한 30대
- "쓰레기통서 아기 울음소리 들려요"…신생아 버린 30대 친모
-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 노골화하는데 싸움만 일삼는 정치권
- “실적·비전에 갈린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표심 향방 ‘촉각’
- "내년 韓 경제 성장률 2.0% 전망… 수출 증가세 둔화"
- [트럼프 2기 시동] 트럼프 2기 내각, `플로리다 충성파`가 뜬다
- 은행이 공들인 고액자산가, 美 `러브콜`에 흔들리는 `로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