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의 본질은 ‘임성근 구하기’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 말이 바뀌고 있다. 지난달 31일 MBC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해병대 수사단에서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해 혐의자로 8명을 지목해 경찰에 넘긴다고 하자 참모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했고, 대통령이 바로잡으라고 지시했다”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야단도 칠 수 있고, 재발 방지 요청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사건 처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온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이 관여했지만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꾼 것이다.
대통령실 입장 변화는 최근 윤 대통령 개입을 뒷받침하는 물증과 추가 증언이 대거 알려진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2일 개인 휴대전화로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인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세 차례 통화했다. 그 직후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보직 해임됐고, 국방부 검찰단이 경북경찰청에서 수사 기록을 회수한 것도 그날이었다. 국회에서 윤 대통령과 통화한 적 없다던 이 전 장관의 말도 다 거짓말이 되었다.
해병대 수사단이 군 사망사건 수사권이 없어 야단을 쳤고, 윤 대통령 관여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대통령실 주장은 안보실이 이 사건 초기 해병대 수사단에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계획서’를 요청해 받은 것과도 배치된다. 대통령실은 수사권도 없는 수사단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고 주장하는데, 임 전 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면 수사이고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면 조사라는 식의 궤변에 다름 아니다. 설혹 수사단의 법리 적용에 문제가 있다면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이 바로잡으면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이 사건 이첩에 직접 관여한 것은 수사단의 이첩 내용이 그만큼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수사단의 최초 이첩대로라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임 전 사단장은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 격노, 이종섭 전 장관의 사건 이첩 보류 지시, 박정훈 수사단장의 이첩 강행, 박 단장에 대한 항명죄 적용, 경찰에 이첩된 조사 결과의 회수와 재이첩을 거치면서 임 전 사단장 혐의는 사라졌다. 경찰에 최초 이첩된 조사 결과와 재이첩된 조사 결과의 주된 차이는 임 전 사단장 혐의의 적시 유무이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건 임 전 사단장 거취 문제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이 모든 사달이 임 전 사단장을 구제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대통령실의 이첩 관여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사건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실 관여 여부가 쟁점이었다면 이제 대통령실이 왜 관여했는지, 그 배경이 ‘임성근 구하기’였는지, 로비나 비선 영향은 없었는지 확인해야 할 단계로 넘어갔다. 공수처는 이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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