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뭐꼬” 화두 붙들고···“좋고 싫음 분별 없이, 그저 보고 들을 뿐”

이영경 기자 2024. 6. 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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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선명상 프로그램 체험
서울 진관사서 기자 대상 진행
‘간화선 명상’으로 화두를 붙들고
‘걷기 명상’ 시간에 주변을 느껴
‘자비 명상’으로 ‘친절’ 기억도
9월 국제선명상대회서 공표 예정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선명상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행사가 열렸다. 금강 스님의 지도로 참가자들이 간화선 명상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오월의 마지막 날,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선 지난달 31일 날씨는 유난히 맑았다. 1년 중 청명함과 쾌적함을 만끽할 수 있는 드문 날 중 하나였다. 서울 은평구 진관사로 향하는 길, 쨍하게 푸른 하늘과 북한산의 초록빛 산세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올해 역점 사업으로 개발하고 있는 ‘선명상’ 프로그램을 기자들을 상대로 체험해보도록 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진관사를 찾았다. 진관사 초입, “종교를 넘어…마음의 정원”이라고 쓰인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불교에선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분별심에서 마음의 고통과 번뇌가 찾아온다고 본다. 기자라는 직업의 분별심에 대해 말하자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는 것이 기자란 직업이다. 마음속에 가득한 분별심과 함께 진관사를 찾았다.

금강 스님의 지도로 참가자들이 간화선 명상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분별심을 내려놓고 “이 뭐꼬”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 정보에 의해 좋고 싫음을 분별하고 욕심을 추구하죠.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갖가지 번뇌가 생기고, 내 안에서 온갖 감정이 일어납니다. 화나 공포와 같이 강렬한 감정은 한번 일어나면 떨치기 어렵죠. 먹구름이 쫙 끼어서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과 같아요. 그런 감정들을 다스리는 방법들이 명상에 있습니다. 매 순간 깨어 있게 하는 게 명상의 핵심이죠. 이를 위해선 ‘마음은 아무 잘못된 것이 없다.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고요하다’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첫 프로그램은 안성 참선마을 선원장 금강 스님이 안내하는 ‘간화선 명상’이었다. 하나의 화두를 붙들고 답을 찾을 때까지 명상하는 선불교의 전통적 명상법으로 무념, 무주, 무상을 깨닫기 위한 것이다. 금강 스님은 열일곱에 출가해 스승으로부터 받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골몰하다보니 분별하는 마음도 나지 않고 감정에 붙들리지도 않았던 경험을 공유했다. 이날 주어진 화두는 ‘이 뭐꼬’. 중국 육조 혜능 대사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3개월을 걸어온 스님에게 “어떤 물건이 왔는고”라고 물은 데서 연유한다. 무엇이 그 몸을 움직여 자신을 찾아오게 했느냐는 질문이다.

“여러분이 아침에 집에서 진관사까지 왔잖아요. 이 몸을 끌고 온 이건 도대체 뭐지? 말문이 막히죠. 이 질문에 내 과거의 경험·지식·정보로 파악하려고 하면 답이 안 나와요.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나’를 찾아야 합니다.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하는 이건 뭐지? 이 뭐꼬? 이 질문을 갖고 한번 앉아봅시다.”

척추를 곧게 펴고 앉아 고요함 속에 명상에 잠겼다. 평소 좀처럼 하지 않던 질문에 대한 답을 짧은 시간 안에 찾는 것은 어렵다. 지금 나로 하여금 행동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란 질문은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준한 스님의 안내로 걷기 명상이 진행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그저 있는 그대로…“뿐”
“지금부터 회사와 인연은 다 끊으시고, 마감 걱정, 글 쓰는 걱정, 집안일 다 끊으시고 온전히 걷는 것 자체만 하겠습니다. 순간순간 들리는 것, 보이는 것 그대로 경험하고 편안한 걸음 같이해보겠습니다.”

이어지는 ‘걷기 명상’이 홍대선원을 운영하는 준한 스님의 안내로 이뤄졌다. 진관사 입구의 한문화체험센터부터 진관사 위까지 올라가는 길을 그저 걷는 것이었다. 지킬 것은 단 하나, 앞 사람과의 간격을 2m 유지하는 것. 자연스러운 침묵 속에 걷기 명상이 시작됐다. 평소라면 생각에 젖거나 대화를 나누느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눈과 귀를 통해 들어왔다. 바람에 흔들리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다양한 초록빛,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만개해 꽃잎을 떨어뜨린 작약과 이름을 모르는 야생화의 고운 빛깔, 산새의 지저귐이 느껴졌다. 그저 걷고 있을 뿐인데, 나를 둘러싼 세상과 나의 감각기관의 연결됨이 또렷이 느껴졌다. 도시인의 빠른 걸음이라면 5분도 안 걸릴 거리였지만 느린 걸음으로 걸으니 15분이 걸렸다.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열린 선명상 프로그램 체험에서 혜주스님이 ‘자비명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혜주 스님의 지도로 자비 명상을 체험하고 있는 참가자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걸어오시면서 어떤 걸 보고 듣고 느끼셨어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경험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 ‘그저 들리는 것을 들을 뿐’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분별을 한단 말이에요. 얘는 좋고, 얘는 싫고, 이런 분별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져요.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선명상입니다.”

진관사 함월당에 도착해 혜주 스님의 안내에 따라 ‘자비 명상’을 가졌다. 싱잉볼 소리에 눈을 감고 자신을 따뜻하게 해준 타인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고, 또 내가 타인에게 베푼 친절과 다정함을 떠올렸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과 친절의 마음을 내 마음에게 보내봅니다. … 몸과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면 이제는 우리의 사랑과 친절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이곳에 초대해봅니다.”

자비 명상은 힘든 내 마음을 돌본 다음, 그 마음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자비 명상을 하면 뇌에서 선물을 받았을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사랑과 친절을 주는 것은 실은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것과 같아요.”

이날 선명상 프로그램 체험은 시간의 제약으로 짧게 진행됐다. 명상 속으로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입구에서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문을 열고 더 걸어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기에는 충분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열린 선명상 체험 행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선명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이것이 ‘K-명상’···마음의 평안 위한 명상 대중화

선명상은 대한불교조계종이 ‘K명상’의 대중화·보편화를 위해 역점을 두고 개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불교의 전통적 수행법인 명상을 일반인들이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급해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자는 취지다. 오는 9월28일 열리는 국제선명상대회에서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공표할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물질적 풍요로 해결될 수 없다. 스스로의 마음을 제어하고 정리 정돈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며 “종교와 상관없이 명상을 통해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마음 평안 운동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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