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확성기 방송은 가장 치명적인 심리전 수단…군사 충돌 우려 급상승

유새슬·유설희 기자 2024. 6. 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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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확성기, 1963년 시작해 재개·중단 반복
2018년 ‘판문점 선언’ 따라 철거한 뒤 6년만
북, 2015년엔 “선전포고”라며 확성기 타격 시도
정부, 9·19 군사합의 등 효력 정지할 듯
2004년 6월 16일 서부전선 무력부대 오두산 전망대에서 군인들이 대북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예고했다. 대북 확성기는 접경 지대 북한군·주민을 대상으로 체제와 한국 문화 등을 전파하기 때문에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심리전 수단이다. 정전협정에 저촉하지 않는 선에서 정부가 북한에 선제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강도의 조치로도 꼽힌다. 남북 관계가 ‘강 대 강’으로 치달으면서 우발적 군사 충돌 가능성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안보실 고위 관계자는 “확성기 재개 문제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절차는 당연히 취할 것”이라며 사실상 대북 확성기 재개를 예고했다.

1963년 5월1일 시작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북 관계에 따라 여러 차례 재개와 중단을 반복했다. 1972년 11월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중단했으나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 우리 군도 1980년 9월 다시 방송을 틀었다.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로 방송은 중단됐다. 확성기를 다시 켠 것은 11년 후인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때문이다. 북한은 “대북확성기 방송은 선전포고”라며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확성기를 겨냥해 군사분계선(MDL) 남쪽으로 화기를 여러발 발사했다. 이후 북한의 제안에 따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이뤄졌고 확성기 방송이 중단됐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대북확성기를 다시 틀었다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방송을 중단했다.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고 합의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확성기 시설을 모두 철거했다. 그리고 북한의 ‘오물 풍선’ 날리기를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재개를 눈앞에 두게 됐다.

1일 오후 국군장병들이 ‘판문점 선언’후속조치 첫 단계로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MDL) 교하소초에 설치된 대북 고정형 확성기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에 극도로 예민한 이유는 확성기로 전파되는 한국 노래, 국제 뉴스, 정치 체제에 대한 내용 등이 북한군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가수 김연자씨의 노래를 듣지도, 부르지도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북한이 크게 반발할 것이 명확해 정부는 확성기 재개에 신중하게 접근해왔다. 지난해 말 북한이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한반도 긴장이 급격하게 고조됐을 때만 해도 정부는 확성기 재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지막 빗장이 풀리는 순간이 눈앞에 온 것이다.

정부는 대북 확성기를 재개하는 데 필요한 절차는 다 밟겠다는 입장이다. 대북 확성기 금지를 명시한 판문점 선언의 후속 합의서인 9·19 남북 군사합의의 일부 또는 전체를 효력 정지할 가능성이 있다. 9·19 군사합의 1조는 남북이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내용이다. 9·19 합의가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인 만큼 평양공동선언도 논의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이 합의들은 국회의 비준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의 결정만 있으면 효력 정지가 가능하다.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 남북 간 우발적 군사 충돌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려면 한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거나 확성기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방법밖에 없다.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포하고 연일 대남 비난을 이어가는 북한이 전자를 선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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