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전공의 이탈에 간호사 신규 채용·발령 ‘무기한 연기’ 불똥

임재희 기자 2024. 6. 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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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사직 사태로 환자 줄어들자
수도권 18곳중 17곳서 채용중단
아산·성모는 하반기 연기 검토
“정상화땐 숙련된 인력부족 우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27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반기에 예정돼 있던 ‘빅5 병원’ 채용 공고가 다 안 올라왔어요. 휴학을 해도 올해 이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란 예측 때문에 절망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서울의 한 간호대학 4학년 학생 임아무개씨)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집단 사직이 100일 넘게 이어지면서, 진료를 줄인 수도권 대형병원의 간호사 신규 채용이 사실상 멈췄다. 현장에선 간호사 채용과 발령이 미뤄진 상황에서 의료공백이 정상화하면 병원들이 숙련된 간호사를 확보하지 못해 환자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기관 설명을 종합하면, 7월 최종 면접을 계획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18곳 가운데 1곳만 2025년도 공채 공고를 냈다. 중앙대병원만 지난달 8일부터 채용 일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18곳은 중복 합격자를 줄이고자 간호사 채용 최종 면접을 같은 기간에 하는 ‘동 기간 면접제’를 하겠다고 복지부와 합의하면서 7월 면접을 예고했다. 이 일정대로라면 5월 전후로 입사 지원서를 받아야 하지만 서울 주요 5개 병원부터 채용 움직임이 없다. 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은 신규 채용을 하반기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도 채용 공고를 내지 않았다. 해마다 새로 자격을 취득한 간호사는 2만여명(지난해 2만2906명)에 이른다.

신규 채용 가뭄은 전공의 집단 사직의 여파다. 병원들은 다음해 필요한 간호사를 1년 전 간호대 졸업 예정자 등을 대상으로 채용한다. 합격자들이 이듬해 2월 국가시험에 합격해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3월부터 현장에 투입한다. 채용 이후 현장 배치까지 대기 발령 상태인 신규 간호사를 ‘대기 간호사’라고 한다. 그런데 올해 대형병원들이 의료 공백으로 대기 간호사 발령을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아산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등은 기존 간호사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까지 받고 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보건경제학·간호관리학)는 “병원들이 간호사를 조금이라도 뽑아 미리 훈련하는 등 자구 노력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의료공백 상황이) 빨리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발령을 받았는데도 연기된 사례도 있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 입사해 3월 발령 공지를 받았던 대기 간호사 장아무개씨는 “발령까지 2주를 남겨놓고 전공의 집단 사직이 발생하자, 병원에서 3월 이후 대기자까지 발령을 무기한 연기했다”며 “지금은 대학병원 입사를 포기하고 다른 곳에 지원 중”이라고 말했다.

의료 공백이 정상화하는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 간호사 신규 채용이 언제 재개될지도 미지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부서장은 “전공의 집단 사직과 관련해 결정된 바가 없다 보니, 간호사가 얼마나 필요할지도 미정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규 간호사 채용이 늦춰지면, 앞으로 의료 현장에서 차질이 생길 거란 우려도 나온다. 송금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바뀌든, 전공의들이 돌아오든 다시 환자가 늘어나면 숙련된 간호사가 필요한데, 대기 인력이 한꺼번에 현장에 투입되면 환자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신규 간호사들이 제때 현장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주 4일제 시범사업을 실시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복지부는 병원별 대기 간호사 규모와 올해 채용 계획 등을 조사해 6월 중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편, 지난 21대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이 무산되면서 진료지원(PA) 간호사가 겪는 불안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범사업을 통해 전공의 업무 일부를 간호사에게 맡겼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법 제정이 없다면, 진료지원 간호사의 업무는 언제든 ‘불법 의료행위’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다. 진료지원 간호사 규모는 3월 말 1만165명에서 4월 말 1만1395명까지 늘었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달 30일 회원들에게 “법적 보장 없이 내몰리는 상황을 정치가 외면해 국민과 간호사는 다시 불안에 떨어야 한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간호법 제정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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