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티켓 아닌 합의금이 목적···영세 영화사 손잡고 '협박사업' 덜미 [수사의 촉]

박호현 기자 2024. 6. 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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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김모씨는 몇 년 전 흥행에서 참패한 한 한국 영화를 최근 '토렌트'로 무단 내려받기 해 시청했다.

A씨와 손을 잡은 영화사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인지도 낮은 영화를 의도적으로 토렌트에 유포해 불특정 다수인의 내려받기를 유도했고 무더기 고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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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합의금 협박
인지도 낮은 영화 의도적 유포
고소건만 1000건···9억 받아내
저작재산권 양도 허위작성 덜미
[서울경제]

서울에 사는 김모씨는 몇 년 전 흥행에서 참패한 한 한국 영화를 최근 ‘토렌트’로 무단 내려받기 해 시청했다.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지만 인기가 없어 금방 내려간 작품이었다. 몇 주 뒤 한 저작권 관리업체로부터 “우리 영화를 무단으로 내려받고 유포했다”며 고소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합의금을 내라는 제안도 왔다. 해당 업체의 대표인 A씨는 처음에는 300만 원을 불렀지만 협상을 통해 합의금은 200만 원까지 내려갔다.

이 같은 수법으로 A씨는 2023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8개월 간 합의금 9억 원을 받아냈다. 고소 건수만 1000건이었다. 합의금 수익은 영화사들과 분배하기로 계약했다.

웹소설 작가인 A씨와 그에게 저작권 관리를 위임한 영화사들에게 고소는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과거 A씨 본인이 창작한 웹소설을 무단으로 유포한 사람을 고소해 손해배상금을 받아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직접 영화 업계에 접근해 인맥을 넓히고 합의금 사업에 대한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영세 제작사들도 제안에 반응했다. 영화 개봉 당시 흥행에도 실패하고 케이블TV 등에서 주문형비디오(VOD)처럼 부가판권을 수익을 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적자에 시달리는 영세 영화사들은 반년에 수억원을 벌 수 있다는 합의금 사업 제안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부인인 B씨와 함께 회사까지 세우며 허가 받지 않은 저작권신탁관리업을 운영했다. 영세 영화사 4곳과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을 대리해 고소 작업을 시작했다.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토렌트가 무대였다. A씨와 손을 잡은 영화사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인지도 낮은 영화를 의도적으로 토렌트에 유포해 불특정 다수인의 내려받기를 유도했고 무더기 고소를 시작했다.

릴레이 고소는 하보람(변호사시험 4회) 서울서부지검 검사의 눈에 포착됐다. 하 검사는 지난해 말 경찰에서 송치된 다수의 저작권법 위반 사건 기록을 검토하면서 B씨가 서로 다른 영화사 2곳의 직원 자격으로 동시에 고소를 대리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몇 달 뒤 하 검사는 새로운 영화사 2곳과 A씨와 B씨가 저작재산권의 공동소유자로 함께 고소한 사건 기록을 확인했다. 영화사가 재산권 지분을 실제로 양도한 것이 아니라 허위의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서만을 작성해 고소에 필요한 외형만 갖추는 정황을 찾은 것이다.이는 강제 수사로 이어지면서 수사 속도도 빨라졌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피의자들의 계좌를 추적하고 주거지 및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자 지난달 피고인 A씨를 변호사법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부인 B씨와 영화 프로듀서, 영화감독 등 6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고소가 고소를 낳는 폐해도 수사 과정에서 확인했다. A씨와 일당은 범죄 수익이 나면 성인영화를 제작하고 저작권을 등록한 뒤 유포하고 또다시 고소를 시작해 합의금을 받아내며 외형을 불려나갔다. 또 더 많은 불법 내려받기를 유인하기 위해 토렌트와 연결되는 공유사이트 제작을 의뢰하는 등 피해자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확인했다.

검찰은 이 같은 ‘저작권 괴물’ 범죄가 속속 늘어나고 있다는 판단에 수사를 확대하고 불법적으로 얻은 수익도 적극 환수한다는 방침이다.

하 검사는 “범행 초기에는 가족을 동원하다가 관리 대상 영화를 추가해 업무량이 폭증하자 A씨는 지인을 직원으로 고용해 업무를 시키고 급여를 지급하는 등 조직적으로 범행한 것을 확인하고 가담자 전원을 처벌했다”며 “저작권 괴물 사범을 엄단하고 합의금 장사로 변질된 남고소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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