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대로 수사 안되면 "불친절"… 민원인 평가에 경찰 골머리

최예빈 기자(yb12@mk.co.kr) 2024. 6.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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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한 사건 불송치하면
담당 경찰관 교체 요청하거나
만족도 점수 악의적으로 매겨
"경찰에 서비스업 마인드 요구"
경찰, 치안 평가방식 개선 고심

서울의 한 경찰서 A경위는 수사 중인 사건의 고소인이 청문감사관실에 수사관을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얘기를 듣고 황당해했다. 고소인은 A경위가 고소 의도와 다르게 수사 방향을 잡고 조사한다는 이유에서 이 같은 민원을 넣었다. 고소인이 여러 차례 수사 방향에 대해 강조하고 '훈수'를 뒀지만, 이를 마냥 무시하면 평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A경위는 얘기를 들어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A경위는 "경찰에게 서비스업 종사자의 마인드를 요구해 수사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난동을 피운 주취자의 뺨을 때려 해임된 경찰관이 논란이 된 가운데 경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묻는 현행 치안 평가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소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소가 이뤄지면 평가 점수가 크게 높아지지만, 그러지 않으면 점수가 바닥을 치기 때문이다. 수사를 객관적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고소인 입장에 무게를 두도록 '유혹'하는 평가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경찰에서는 매달 전국 18개 시도 지방경찰청을 대상으로 치안고객만족도 평가를 하고 있다. 치안고객만족도는 경찰과 대면한 민원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데 업무 처리 절차와 과정, 응대 태도, 서비스 품질, 서비스 환경 차원 등에 대해 평가한다.

2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치안고객만족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국 18개 시도 지방경찰청 가운데 서울경찰청의 만족도 조사에서 수사 분야는 63.4점으로 치안고객만족도 전체 평균 점수(82.3점)를 크게 하회했다. 민원 처리 분야 만족도가 95.2점으로 가장 높았고 112 신고 분야 90.4점, 교통 분야 80.3점 순이었다. 안 그래도 낮은 수사 분야 만족도는 전월 대비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만족도 조사에 참가한 고소인은 "왜 고소하느냐고 말하는 등 공격적이고 강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수사 분야 평균 점수가 이처럼 가장 낮게 나온 것은 민원인이 주는 점수의 편차가 그만큼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사건의 기소 여부에 따라 점수가 크게 갈린다는 평가다.

한 경찰 관계자는 "민원인이 고소·고발한 사건을 불송치하면 대부분 불친절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실제 서울경찰청 평가 점수를 보면 사건을 송치했을 때 평균 점수는 73.7점에 이르는 반면, 불송치했을 경우에는 47.9점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예컨대 서울경찰서 중에서 고객만족도 점수가 가장 높은 은평경찰서도 기소 시엔 평균 85.4점을 받은 반면 불기소 처리됐을 경우 70.9점을 받는 데 그쳤다.

이처럼 수사 분야 만족도 평가가 경찰서 전체 치안고객만족도 점수를 좌우하는 셈이다. 실제 서울청 관할 경찰서 31곳이 받은 수사 만족도 점수는 최저 45.1점에서 최고 79.6점으로 편차가 크다. 반면 민원인들과 크게 부딪힐 일이 없는 112 신고 처리 분야 등에서는 대부분의 경찰서가 균일하게 점수가 높은 편이다.

서울경찰청은 수사 분야 집중 관리를 통해 치안고객만족도를 보다 향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예컨대 수사 분야 친절도를 높이기 위해 부정적 예단이나 선입견을 드러내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업무를 개선하고, 쉽고 친절한 수사 통지 문구를 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고소인과 진정인이 수사 업무에 대해 직접 만족도를 평가하는 게 맞지 않는다는 현장의 지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대도시 같은 치안 수요가 많은 곳은 평균적으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일선의 목소리를 수용해 악성 민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경찰청에 제출하면 악성 민원인이 응답한 점수는 제외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수사 관련 평가를 이른바 악성 민원인도 하도록 하는 현행 방식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악의적 의도를 갖고 평가 점수를 낮출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한 30대 수사관은 "여러 평가 지표를 신경 써야 하다 보니 악성 민원인이 고소·고발한 사건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악의적 의도를 갖고 고소·고발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이 같은 악성 민원인을 달래며 일해야 할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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