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사 재심 무죄 잇단 ‘불복’에…유족들 “국가의 2차 가해” 진정
검찰이 과거 간첩 조작사건 등에서 불법적인 수사를 바로잡는 재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상소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으며 명예 회복을 기대했던 피해자와 유족들은 다시 법정 싸움을 벌여야 하게 됐다. 이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재심 권고와 검찰이 스스로 만든 매뉴얼에도 맞지 않는 검찰의 상소 제기가 국가의 2차 가해이자 인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검찰의 불복 상소의 가장 최근 사례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고 최창일씨 사건이다. 재일동포 2세인 최씨는 한국 탄광 기업에 취업했다 간첩으로 몰렸다. 재판부는 지난달 23일 최씨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진술했다며 무죄를 선고하고 유족과 고인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서울고검은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외에도 고인이 된 피고인이 과거 공개재판에서 범행을 시인했다”며 상고했다.
검찰이 상고한 것은 최씨에 대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재심 과정에서 ‘수사상 불법이 존재한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법정에서 진술할 때는 변호사가 선임되는 등 본인의 뜻대로 자백 취지의 진술을 했고 다른 증거가 많아 유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19년 6월 대검찰청 공안부가 만든 ‘과거사 재심 사건 대응 매뉴얼’을 보면 ‘법정에서 한 자백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것이 채증법칙에 반한다고 판단될 경우’나 ‘증거능력이 부정된 증거를 제외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도 범죄사실이 증명됐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매뉴얼은 “불법구금·가혹행위를 이유로 자백의 임의성, 신빙성이 부정된 경우 그 자체만을 이유로 상소하는 것은 자제하라”고 규정한 뒤 다시 “고문 등으로 증거가 조작됐음이 명백하거나 공범이 무죄 확정됐고 달리 유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새로 발견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상소 부제기”라고 정하고 있다.
검찰의 상소는 진화위의 권고도 사실상 무시한 것이다. 지난달 14일 진화위는 “검찰은 최씨가 불법적인 수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소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공익의 대표기관으로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사과,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 및 재심 등을 권고했다. 진화위의 권고는 법적인 효력이 있다. 과거사정리법 32조의2는 “국가기관은 권고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고 한삼택씨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진화위의 재심 결정에도 불구하고 상소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한씨에 대해 지난 2월 2일 항소했다. 한씨는 1967년 조총련 관계자와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렸다. 지난해 2월 진화위는 한씨에 대해 불법감금과 전기고문으로 허위 자백이 강요됐다며 재심을 권고했다.
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지만 검찰은 이에 항고하면서 “진화위가 청구인 측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근거로 증거 없이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진화위 결정 등을 근거로 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곧 항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진화위 결정은 없었지만 매뉴얼을 어긴 것으로 보인 사례도 있다. 간첩으로 몰려 1967년 사형까지 당한 고 오경무씨는 지난해 10월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오씨의 형제인 오경대씨가 2020년 앞선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확정된 게 근거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검찰은 ‘공범의 무죄 확정’에도 오씨에 대해 지난해 11월 항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씨와 한씨 유족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검사의 공소 및 상소 등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핵심인데 이를 지키지 않는 검찰권 행사는 또 다른 국가폭력이자 2차 가해다”라고 말했다.
한씨의 자녀 등 유족들은 오는 3일 검찰의 항소가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계획이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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