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3기 가능”…전기본 총괄위도 감추지 못한 원전의 그림자
신규 대형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 등을 골자로 하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이 지난달 31일 공개된 뒤 파장이 일고 있다. 대형 원전과 SMR은 시민 수용성이나 경제성·안정성 측면에서 논란이 있는 발전 설비이기 때문이다.
“최대 3기” 모호한 표현…왜?
2038년까지 전력 수급 계획을 결정하는 11차 전기본 총괄위원회는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발전량 1.4기가와트(GW)인 대형 원전 3기, 발전량 0.7GW인 SMR 1기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는 현재 건설 중인 원전 등 기존 계획에 포함된 설비로 충당할 수 있지만 2031년부터 2038년까지는 총 10.6GW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2031년부터 2년 단위로 설비를 추가할 것을 권고했다. 사업자 의향을 바탕으로 추가 설비 계획을 정했는데, 2031~2032년 액화천연가스(LNG)를 활용한 열병합 발전으로 2.5GW를 충당한다. 이어 2033~2034년에는 1.5GW 설비가 필요한데 이는 차기 12차 전기본에서 결정하도록 남겨뒀고, 2035~2036년 필요하게 되는 2.2GW는 발전량 0.7GW인 SMR 등으로 충당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따라 마지막 남은 2년인 2037~2038년에는 4.4GW를 한 번에 충족해야 하는데, 이 수단으로 대형 원전을 택했다는 게 총괄위의 설명이다. 발전량 1.4GW 원전 3기로 4.2GW를 충당하고, 나머지 0.2GW는 12차 등 차기 전기본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다만 몇 기를 건설해야 하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총괄위는 “최대 3기가 가능하다”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정동욱 총괄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실무안 공개 브리핑에서 “(몇 기인지) 확정하지 않은 이유는 2038년까지 부지 확보라든가 3기를 동시에 지을지, 2기를 짓고 1기를 다른 부지에 지을지 이런 것에 대해 사업자가 정부와 협의해서 최적안을 도출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리핑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최대 3기가 어떤 의미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에 정 위원장은 “명확히 3기 건설을 제안한 것”이라 수정했다.
그러자 총괄위 한 위원은 ‘최대’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부가 설명했다. 이 위원은 “원전은 어떤 입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 불확실성이 크게 존재한다”며 “입지 선정이 지연되고 착공이 지연될 경우 온실가스 감소 경로를 달성해야 해 그 물량이 다른 무탄소 전원에 옮겨갈 수 있다. 그런 경우 원전이 (3기보다) 조금 줄어들 여지가 있다는 취지에서 그런 표현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위원의 말처럼 원전은 논란이 큰 발전원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시민 수용성이 크게 낮아져 부지 확보가 매우 어렵다. 대형 원전 건설에는 통상 부지 확보부터 준공까지 약 167개월(13년11개월)이 소요돼 전기본 실무안대로라면 올해 부지 확보에 착수해야 한다. 당장 온라인에서는 ‘수요가 밀집된 수도권에 건설하라’ ‘냉각수가 필요하니 한강 인근에 설치해야 한다’ 등의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와 달리 원전의 경제성도 크게 떨어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민 수용성이 낮아 부지 확보 기간을 비롯해 공사 기간이 늘어나면 비용도 증가하고, 특정 지역에 전력망이 쏠려있는 계통 포화 등으로 더 이상 과거처럼 경제성이 높은 발전 설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기후환경운동 단체 ‘플랜 1.5’ 권경락 활동가는 “11차 전기본의 원전 계획은 (기존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이 아무런 지연 없이 이뤄져야 달성할 수 있다”며 “하지만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한 안전설비 강화 등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그만큼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형모듈원자로, 사용후 핵연료 우려도
사상 처음으로 전기본에 담긴 SMR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SMR은 전기 출력이 0.3GW 이하인 원자로로, 대형 원전 100분의 1 크기 이하 수준으로 축소한 원자로를 말한다. 세계적으로 상용화한 곳이 없고 개발 중임에도 총괄위는 상용화 실증을 위해 2034~2035년 SMR 건설을 마치고 운영을 시작하겠다고 시점도 못박았다.
SMR의 경제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권 활동가는 “정부가 집중 추진 중인 ‘혁신형 SMR’의 벤치마크 대상이 미국에서 추진 중인 뉴스케일 SMR인데, 전력 수요자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비용이 50% 급증해 좌초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며 “이 사업의 발전단가는 1메가와트시(MWh)당 99.5달러 수준으로 실제 건설 비용의 상승 등을 반영할 경우 발전단가는 급증할 것”이라고 했다.
원전이나 SMR을 가동하면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처리도 우려를 더한다. 현재는 원전 부지 안에 임시로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고 있는데 포화 시점이 임박했다. 원전 관계자들은 2030년 한빛 원전을 비롯해 10년 내 한울·고리 등 다수 원전이 포화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1대 국회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제정 여부를 논의했지만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임재인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더 이상 원전은 저렴한 에너지원이 아니다”라며 “아직 과거 원전에 대한 환상에 너무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신규 원전이 향후 좌초 자산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지 않은 점도 환경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38.4테라와트시(TWh)로 10차 전기본(134.1TWh) 때보다 늘어나지만 전체 전력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차 전기본과 같은 21.6%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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