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불러온 나비효과…강소 언론사들의 약진

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2024. 6. 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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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 활용, 적은 인원으로도 심층 탐사보도 가능케 해
2024년 퓰리처상이 한국 언론에 던지는 시사점

(시사저널=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은 108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매년 수상작들은 뛰어난 내용뿐만 아니라 시대의 환경 변화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기사로 자리 잡았다. 5월6일 2024년 퓰리처상 수상작이 발표됐는데, 올해 두드러진 취재 대상은 미국이 아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동 가자(Gaza) 지역이었다. 이 주제는 국제보도와 속보 보도사진 부문에서 수상작을 배출했으며, 이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취재한 언론인들에게는 '특별 감사(special citations)' 성명이 발표되었다.

올해 언론부문 수상작을 분석해 보면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감지된다. 첫 번째 변화는 전통 신문들의 어려움 속에서도 범죄·인권·의료·환경 등 특화된 주제를 취재하는 소규모 온라인 중심 언론사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은 언론사들은 심층적인 보도와 장기간에 걸친 독창적인 취재를 통해 독자들의 신뢰를 얻으며 새로운 주류 언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변화는 취재 과정에서 AI를 활용해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고 사회 변화를 견인한 점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보도와 국제보도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수상작이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AI 기술은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심층적이고 맥락 있는 보도를 가능케 함으로써 그 가치를 입증했다. 2024년 퓰리처상 수상작에 나타난 미국 언론의 두 가지 주요 변화와 함께 그것이 한국 언론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비저블 인스티튜트와 시티 뷰로가 공동기획한 '시카고의 실종' 기사 유튜브 화면. 이 기사는 올해 지역보도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민규 제공

온라인 탐사보도 전문 언론사, 대상 수상

퓰리처상의 대상 격인 공공부문(public service) 퓰리처상은 전통적인 대형 신문사를 제치고 온라인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언론사인 '프로퍼블리카(ProPublica)'가 '법원의 친구들(Friends of the Court)' 시리즈로 단독 수상했다. 이 시리즈는 미국 대법관들을 매수하려는 억만장자들의 행태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결과적으로 미국 대법원이 대법관들의 품위 유지를 위한 행동강령을 제정하도록 이끌었다. 프로퍼블리카는 이로써 퓰리처상을 일곱 번째 수상하게 되었다.

통계적으로 올해의 퓰리처상은 소규모 온라인 중심 언론사들이 전통 신문사들을 능가하는 역사적인 해로 기록되었다. 15개 분야 중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각각 3개 부문을 수상했지만, 소규모 온라인 언론사들은 공공부문을 포함해 4개 부문에서 수상작을 배출했다.

특히 주목받은 언론사 중 하나는 '인비저블 인스티튜트(Invisible Institute)'다. 이 언론사는 제도화된 조직을 거부하고 투명하고 느슨한 협력자 네트워크와 특화된 조사 스타일을 강조하며, 최근 4년간 4편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7년 '게릴라 기자' 제이미 칼벤에 의해 설립된 이 언론사는 시카고 경찰의 만성적인 비리와 흑인·여성 인권 문제에 특화된 탐사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시카고 남부 지역 내 흑인 여성과 소녀들의 실종 사건과 경찰의 무성의한 대응을 다룬 '시카고의 실종(Missing in Chicago)' 시리즈로 '시티 뷰로(City Bureau)'와 함께 지역보도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백인 청소년들의 증오 범죄를 재조명한 팟캐스트 시리즈 '너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어(You Didn't See Nothin)'로 오디오 보도 부문에서도 상을 받았다.

2020년 출범한 신생 언론사 '룩 아웃 산타크루즈(Lookout Santa Cruz)'는 2023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해 1000곳 이상의 주택과 상업시설을 파괴하고 많은 이재민을 낳은 재앙적인 홍수와 산사태에 대한 상세하고 신속한 보도로 속보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밖에도 우수작 가운데는 'KFF 헬스뉴스(KFF Health News)'가 공공부문에서, 의료전문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 '스탯(Stat)'이 탐사보도 부문에서, '텍사스트리뷴(Texas Tribune)'이 해설보도 부문에서, '더 마샬 프로젝트(The Marshall Project)'가 피처 라이팅 부문에서 각각 수상했다. 성공하는 소규모 언론사의 공통점은 타깃 오디언스에 특화된 접근을 통해 독자들에게 좀 더 맞춤화된 정보를 제공해 신뢰와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해당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올해 퓰리처상은 기술의 진보가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반영했다. 특히 생성형 AI 확산과 관련해 눈에 띄는 변화는 관련 기사의 AI 활용 여부를 명시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이는 약 1200개 응모작 가운데 45개 최종 후보작 중 5편이 AI를 활용한 취재 기사였고, 최종 16편의 수상작 가운데 2편이 AI를 학습해 완성된 수상작이었다는 사실에서 그 중요성과 비중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퓰리처상 수상자에게 수여되는 메달 ⓒAP연합
올해 퓰리처상 속보 사진 부문 수상작인 전쟁을 피해 이동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피난 행렬 사진 ⓒREUTERS

AI 활용 기사 허용하기로 한 퓰리처상

초창기 퓰리처 위원회에서는 AI와 기계 학습의 허용 여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AI 활용에 대해 '악마가 오고 있다'는 두려움 속에 표절이나 가짜뉴스 양산 가능성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되자, 위원회는 오랜 기간에 걸쳐 AI 활용 기사를 인정할지 여부에 대해 논의했다. 최종적으로, 후보작 제출 시 AI 활용을 제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위원회의 결정은 뉴스룸이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특히 올해 퓰리처상에서 AI 활용 보도가 두 부문에서 수상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시카고 경찰의 실종자 문제를 취재한 '시카고의 실종(Missing in Chicago)' 시리즈는 인비저블 인스티튜트와 시티 뷰로의 기자들이 기계 학습 도구인 주디(Judy)를 사용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약 3만 건에 달하는 경찰에 대한 불만 사항 공식 기록을 검토하고, AI가 이를 통해 성차별적이고 거짓 의심 패턴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부정확한 데이터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고 구체적인 사례 발굴을 통해 더욱 정확하고 효과적인 취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국제보도 부문 수상작인 뉴욕타임스의 가자 전쟁 보도 '하마스가 이스라엘군에 대해 알고 있던 비밀(The Secrets Hamas Knew About Israel's Military)'은 인공위성 이미지를 대상으로 AI 비교 분석 메커니즘을 활용해 가자 지역에서 폭탄 구덩이를 찾아내기 위해 기계 학습 도구를 사용했다. 방대한 영상 이미지 분석을 통해 민간인들에게 위협이 된 2000파운드(907kg) 대형 폭탄 사용을 폭로하고, 이스라엘의 잔악한 군사행동이 민간인에게 미친 영향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러한 두 편의 수상작 사례는 저널리즘에서 AI와 기계 학습이 어떻게 혁신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사례로 보여주었다. 이는 탐사보도 분야에서 AI 기술의 잠재력을 입증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허리케인 이안, 플로리다 은퇴 커뮤니티 문제, 미국 내 총기 폭력 등의 주제를 다룬 세 편의 최종 우수작도 AI를 활용해 호평받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많은 논란에도 탐사 저널리즘에서 AI의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AI가 보도의 깊이와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널리 입증했다. 이와 같은 AI의 적절한 사용은 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를 가능하도록 해 저널리즘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AI 기술이 어떻게 적절하게 통합되어 저널리즘의 미래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중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언론사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AI가 상당 역할

퓰리처상을 통해 살펴본 미국 언론의 두 가지 변화는 한국 언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 번째 변화인 소규모 언론사들의 약진은 전통적인 대형 신문사들이 겪고 있는 구독률 감소와 경영난 속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강소 언론사들은 규모는 작지만, 독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하며 특화된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로 독자로부터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이는 한국 언론사들에도 깊이 있는 취재와 독립적인 보도를 통해 독자층을 확대하고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두 번째 변화는 취재 과정에서 정교한 AI 기술의 적극 활용이다. 올해 퓰리처상의 지역보도와 국제보도 부문 수상작을 분석해 보면 초기의 방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과정에서 AI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향후 한국 언론도 AI 기술을 도입해 자료 수집과 정교한 분석을 통해 심층 탐사보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비저블 인스티튜트 사례처럼 AI 활용은 적은 인원으로도 기자들이 더 많은 창의적인 작업과 깊이 있는 보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AI를 잘 활용하면 취재 목적과 지향점이 더욱 선명해지고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더 깊이 있는 보도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언론이 현시대의 도전을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언론으로 거듭날 기회를 제공한다. AI 기술을 활용한 조직 개편은 한국 언론이 국내외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독자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정보 시대에 언론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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